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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9.12 수료/Texts

2008년 가을학기 에세이 : 만남을 통해 배우다.

프로젝트 에세이

일본어 프로젝트
:슈레대학에 다녀온 후 한동안 나의 일본어 실력에 다소 슬럼프를 겪었다. 나의 일본어는 3일동안 공부한 다른 사람들보다 짧았기 때문이다. 욕심만 가득했었던 나의 2학기의 실력을 고스란히 보여준 격이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는 '일본어 노트를 만들자'를 목표로 시작하였다. 한편으로는 통합반 형태로 된 강의가 되어 다시 기본을 다질 줄 알았으나 초급반과 중급반으로 나뉘어 진행되었고, 나는 그 두 반 사이를 왔다리 갔다리 하며 배우게 되었다.

강의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지자, 나의 실력은 쑥쑥 늘었고 지난 2학기보다 더 재미있는 일본어들을 배우게 되었다. 자주 사용하는 한자들을 알게 되었고, 동사문장과 부정형, 형용사 등 문법에 대해 배우면서 어휘가 조-금 늘게 되었다.

일본어 프로젝트는 '만남과 소통을 위한 일본어'라는 Full name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번 학기에 '우에노 치즈코'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서 프로젝트 이름에 대한 확실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하자에서 일본어&글로비시&프랑스어를 배우는 것은, 개인의 기호와 관심을 능력을 가져가는 역할도 있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오는 하자에서 자신의 능력을 살려 만남의 자리를 가지게 되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호흡과 생각들을 이어, 방학 때에는 영화, 노래, 교과서 등 흘려듣는 것이 아니라, 가사를 써보거나 일본어로 된 책을 봐보거나 하는 등 실제 생활과 이어서 조금 더 다양한 일본어를 배울 수 있는 준비를 하겠다.

인문학
이번 학기는 '음악'을 주제로 진행되었는데, 다양한 게스트들과 나라를 통한 노래들을 배우면서 내가 알고 있던 지식에 대해 많이 놀라게 되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들었던 노래들을 들으면서 이미지가 그려지는 것에 놀라면서, 음악가는 음표와 악기를 통해 자신이 보는 세계를 표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의 시간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았던 것은, 각 테이블에서 같은 주제를 가지고 짧은 토론을 하는 시간이었다. 캐치스코프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그것도 우연히 모인 사람들과!) 토론을 해보는 것은 처음 경험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간은 3번 정도 후에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만약 테이블 별 토론이 자주 일어나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더 나아가 인문학 카페에서도 활발한 토론을 하는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전체 에세이

지난 에세이에서, 내 자신에게 에세이를 보라고 권했다. '초속 5cm'라는 자신의 속도에 대해서 잊지 말자며. 그러나 이번 학기 들어서 에세이를 돌아보았던 것은 3번이었고 어느 때보다 숨 가쁘면서 늘어지는 학기였다. 내가 생각하는 속도와 실제 속도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마음은 정말 숨가쁘게 달리려고 했고, 몸은 마음의 속도만큼 빠르지 않았다.어떤 학기보다 가장 많이 울었다. 내 자신에게 화가 나서, 다른 사람이 무서워져서 정말 많이 울었다. '괜찮아' 라는 말을 하기엔, 내가 너무 못나보였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우울한 톤에, 8월을 회상하기 버거워진다. 그러니 이만 여는 말은 여기서 닫고 지금부터 8-12월까지의 나를 풀어야겠다.

슈레대학을 방문하다.
8월, 무한도전과 프리스쿨이 끝나고 긴장의 끈이 풀려갈 때 즈음, 캐치스코프의 토토, 유란, 한결, 뿡과 나는 도쿄에 있는 슈레대학에 가게 되었다. 슈레대학은 국제적 교류가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는 학교인데, 이번 'Shure Univercity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이하 Festival)도 다양한 학교들과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이번 영화제에선 Visual Rave (이하 V.R)의 '고스트 걸즈'와 'KTX 300km가 들려준 침묵과 함성'이 초대되었다. 우리가 만든 영상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진득한 토론을 했었지만, 가기 전까지 왜 가는지는 사실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가고 싶던 일본에 가게 되는 것, 그것이 나를 더 설레게 했다. 처음 주니어가 된 2007년 가을학기부터 나는 일본에 관심이 있어, 일본어를 배우고 있었다. 일본의 전통적인 이미지들을 '내가' 찍고 싶었고, 그래서 여행 중의 의사소통이 불편하지 않고자 일본어를 배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일본에 도착하자 중요해 진 것은, 일본어도 사진기도 아니었다.

슈레대학에 도착했을 때, Festival의 참여한 사람들의 다양함에 놀라게 되었다. 일본의 다큐멘터리 감독, 초등학교 선생님, V.R, 모스코 국제 필름 스쿨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영상들을 보게 되었다. 기록을 하기 위해 사진기를 들고 갔었지만, 그 규모에 놀라 얼이 빠져, 영화제 기간 동안 많은 사진을 찍지 못했다. 얼이 빠져있는 동안, 많은 영상들이 지나갔고 어느새 V.R의 영상에 대해 감독과의 대화를 하는 시간이 왔다. 뿡이 대표로 나가고, 통역으로 아사쿠라상과 토토가 함께하였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라는 다양한 언어 속에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영상이 아니라도 질문을 이해할 수 있고,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내가 지난 준비 모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그렇게 4박 5일 이라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을 슈레대학에서 보내고, 서울로 돌아왔다. 시간은 어느새 9월,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학기가 시작되었다.

주인공
슈레 대학에 다녀온 것을 정리할 틈도 없이 학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이제껏 욕심 내오던 길드에 참여하게 되었다. 2008년 가을학기에 길드가 생성되면서, 길드의 멤버들은 '영화 읽는 목요일'과 '살롱'에 진행과 구성에 대한 회의를 열었다. 기획이 80%정도 진행되어 갈 때, '하자 작업장 학교 생일 파티'를 진행하라! 라는 미션을 받게 되었다. 당황하고 놀란 감정이 얼굴에 역력했다. 나와 밤비가 진행을 맡게 되었는데, 너무 어수선하게 진행되었는지라 자세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아쉬웠던 점은, 우리가 기획했던 것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파티'에 집중하여 거의 '이벤트'를 만들려고 했었고, 보다 못한 세이랜이 새로운 제안을 해주면서 하자작업장학교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가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생일파티는 "길드가 기획 했어요"라고 하기에 부끄럽다.

어찌되었든, 이번 생일파티는 지난번에 진행된 것보다 많은 의미를 띄었다. 내년엔 하자가 '창의센터'로 전환되면서 어쩌면 하자에서 이뤄지는 작업장학교의 마지막 생일파티 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비와 나는 '하자 작업장학교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라는 질문을 서로 던졌다. 세이랜, 히옥스와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하고자하는 메세지들을 준비하였다. 생일 파티가 시작하기 5분 전에 멘트가 나와 파티 진행 내내 멘트를 보며 진행하는 미숙한 진행이었지만, 생일파티의 진행을 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처음으로 내가 본 행사로 기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있는 공간을 상상하면, 항상 내 시선이 아닌 다른 타자가 나를 보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이번 생일파티는 나의 시선으로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시선이라는 것은 나에게 누가 주체냐는 것을 알려주는데, 지금까진 나조차 주체가 아니었다면 이번엔, 내가 보는 사람들과 나도 주체였기 때문이다.

생일파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밤비는 나에게 슈레대학 방문 기사 의뢰를 하였고 나는 단번에 받아들였다.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무작정 해보자 라는 마음에 하게 되었고, 기사의 개요를 쓰기 전 서밋이 시작되었다.

카메라를 들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다.
슈레 대학에 다녀온 후,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가 상승하였다. 열심히 준비했고, 청소와 테이핑을 하면서, 하자의 외관은 손님을 맞을 준비를 맞췄다. 영상 방에 있는 우리도 카메라를 나누고, 일정표에 따른 인원배치를 하면서 준비를 맞추었다.

그리고 서밋이 시작되고, 진행 동안 하자에 가면서 주문처럼 '침착해지자'를 되내었다. 일주일동안 카메라를 들고 중요한 행사를 찍는다는 생각에 못 찍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고, 토토와 유란이가 같이 있었지만 혼자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촬영, 편집 중 내가 좋아하는 것은 있었지만, 내가 잘 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서, 더더욱 부담이 되었다. 모든 행사가 중요한데, 내가 찍은 부분만 구리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이건 빼도 박도 못한다. 잘 찍어" 라는 생각으로 나 스스로에게 부담감을 주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지만, 카메라를 들었다는 압박감에 촬영할 때도 항상 얼어있었다. 아무리 '침착해지자'를 되뇌여도, 막상 하자에 도착하면 잊어버리니 급하고 격하면서 자신감 없는 상태로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 촬영에 임했었고, 결국 사건은 슬램 워크숍의 강사를 인터뷰 하는 날에 터졌다.

인터뷰는 녹음실에서 진행되었는데 화각도 앵글도 잘 나오지 않았고, 카메라의 위치도 잡기 힘들었다. '자리 좀 비켜줘라, 여기 화각이 안 예쁘다'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지만, 말할 수 없었다. 빨리 찍어야 된다는 생각과 '내가 뭘 요구할 수 있지'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인터뷰가 진행되었고, 최악의 최저질의 영상이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캐치스코프 중간 점검에서 그런 나의 상태를 꽤 뚫는 코멘트를 받게 되었고,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유리 옆에 붙어, 촬영에 대해 하나하나 공책에 적기 시작했다.

'차분하게' 라는 말을 되뇌이며 촬영에 임하자 지난 3일과는 대조적으로 조금씩 안정적인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슈레대학에서 들었던 질문이 생각난다. '카메라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라는 질문에 '카메라를 들게 되면 그 때의 감정과 기분 상태까지 드러나서 내가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것이다'는 대답을 했었고, 이번 서밋에서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다.

일주일이 지나면서, 홍콩 학교에서 온 친구를 사귀었다. 딱 한 번 이었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촬영 때문에 바쁘기도 했지만, 실은 영어 때문에 더 대화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이 잘 전달되는지, 그 애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얘기할 때마다 항상 스피카자 팀과 같이 할 수도 없고, 답답하였다. 그래서 서밋이 끝나고 글로비시를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다음에 서밋에서는 진득한 대화를 나눠보리라 생각하면서.

서밋이 끝났다. 이젠 편집과 기사가 남았다. 끝나자 마자 우리는 테이프를 정리하고 각자의 역할을 나누었다. 그러나 이제껏 계속해서 움직이며 할 것들만 있다가 앉아서 해야 할 일들이 생기니 좀이 쑤셨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나만 보이고 재미없고 무료한 일상들인 것 같아서 집중할 수 없었다.

내 자신에게 외치다. "길찾기 처럼 왜 그래!"

시작하고 움직이고 하는 시간들이 지나고, 이젠 앉아서 쓰고 편집할 시간들이 남았다. 이제 서밋 편집을 시작하고 조만간 끝내야 하는데, 아직 기사가 남아있었다.

기사는 지난 8월에 도쿄 슈레대학을 다녀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서밋과 연결하여 하자와 다른 학교간의 교류에 대해 써야 됐었다. 그러나 나 혼자 쓰는 것이었기 때문에 같이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라지고 나의 주관으로 쓰게 될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리뷰모임을 안 하고 시간이 지나간 지라 도쿄에서 기억은 나와 다른 사람들에겐 떠올리기 힘든 시간이 되었다.

고민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나는 늘어졌다. "쓰면 되겠지, 아직 많이 남았잖아, 할 수 있을 꺼야"라는 생각에 인터넷을 방황하고 있었고 그런 시간들이 길어질 수록 하루하루 마감 날은 미뤄지고 있었다. 10월이 마감이었던 기사는 어느새 11월을 향해 기어가고 있었다. 만약 마감 기간도 없었더라면, 나는 언제까지 늘어졌을까, 정말 정신 못 차리고 있었다.

그래도 유리와 밤비의 코멘트를 받으면서 기사를 기행문과 가까운 형태로 수정하면서 다행히 기사는 끝났다. 기사가 끝난 후 나는 나 자신에게 굉장한 실망감을 표했다. 이것밖에 안됐다니, 기사는 분명 공동 작업이었고, 나는 처음도 아닌데 기사를 쓰는 동안 당황스러움과 느린 속도를 가지고 임했다. 마치 하자에 처음 들어온 길찾기 처럼.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보면, 그 때 내가 힘들어 했던 것에 '공동 작업'이 큰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기사같은 공적인 글은 주관적인 경험보다 같이 참여했던 사람들의 시각이 들어가면서 객관적인 글 이어야했었다. 그리고 그 글을 다녀온 사람들 뿐 아니라 하자의 다른 사람에게 잘 전달될 수 있게 하는 것. 그 경험은 지난 학기 열린작업장 P.V(Promotion Video)와 비슷하였지만 대표가 되어 글을 쓰고, 그 때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부담감이 느껴졌었다.

어찌되었든 그 때 당시에는 이런 이야기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아직 기사의 여파에서 벗어나기 전에 'Save my city'라는 전시프로젝트에서 동쪽 팀의 팀장이 되었다.

Save my city는 동, 서, 남, 북으로 나뉘어 각 방위에 있는 도시의 이야기들을 각 팀의 시선으로 보고 영상으로 표현하는 작업이었다.

초반에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나는 이 프로젝트마저 망치게 된다면, 이번 학기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학기가 될 것 같은 생각에 "이번에는 잘해보자!"라는 마음이 들었고,  그 생각에 더 조급함을 내면서 회의에 참여했다. 그렇게 조급한 마음이 담긴 회의는 잘 진행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에세이를 빌어 팀원들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싶다.
기획과 시나리오 구성을 위해 진행되었던 온라인 회의는 잘 진행되지 않았고, 시간만 잡아먹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나를 지치게 했었고 중간점검에서 지침과 조급함이 섞이면서, 땀을 찔찔 흘렸던 프리젠테이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프리젠테이션이 끝난 후 ‘황금도시’를 찾아가는 세 명의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했고, 촬영전 날 시나리오와 스토리보드를 그리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촬영 전날에 시나리오와 스토리보드가 나오는 이 마당에 촬영이 진행될 수 있는지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내 의심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촬영은 생각외로 잘 진행되었다. 배우를 한 사키, 제이, 로이의 연기는 어색하지 않았고, 미술감독의 화면구성과 ‘빨간약’(첫 단편영화)를 찍을 때 보다 좋아진 Fanning에 (카메라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리는 것) 스태프들의 열렬한 참여에 놀랐다. 체력적으로 지쳤겠지만 서로에게 자극을 주면서 진행된 촬영은 어느 때보다 활기차고 후끈했다. 이 때의 상태와 영상은 나왔다는 자체로 나에게 감동이었고, 후반으로 갈수록 재밌게 작업한다는 느낌이 사람들의 얼굴에서 전해져 오면서 나는 만족감을 느꼈다. 전시프로젝트라 퀄리티가 중요했었지만, 나는 그것보다 작업을 하는 동안 우리가 느끼는 즐거움의 비중이 컸다. ‘황금도시’를 찾아가고 찾은 주인공들 처럼, 자신들이 찾은 ‘반짝임’처럼 내가 가장 ‘반짝’이는 순간은 작업을 즐겁게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간 결과를 중요시하고 과정을 생략하던 나에게, 이번 Save my city는 결과보다 과정이라는 것을 알려주었고, 결과에 대한 부담감을 더는 기회가 되었다.

아니, 벌써!
상큼한 마음을 가지고 맞이한 12월은 충격의 달이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나버리다니 .12월 1일을 맞이한 나에게 제일 먼저 반갑다고 인사해준 건 서밋 영상과 막막한 에세이 그리고 쇼하자였다.

Save my city프로젝트가 끝나면서 그 동안 느꼈던 긴장감이 한순간에 풀렸다. 그리고 아주 잠시 동안 나태해졌었다. 다행히 이번 나태함은 많이 길지 않았다. 11월 달 나의 상태에 비례하듯이 11월의 출근카드는 엉망이었다. 지각과 엉성한 시간에 퇴근. 그래서 분발하고자 이번 달에는 잘 찍고 잘 마무리 해보려고 한다.

이제 마무리하는 달이 왔는데, 상쾌한 마음보다는 찝찝하고 우울한 마음이 크다. 그건 아직 끝나지 않은 글쓰기들과 서밋 영상들의 여파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학습계약서에서 보겠다고 했던 책들과 쓰겠다고 한 시들이 이뤄지지 않은 꿈으로 남은 채 나를 압박하고 있다.

Save my city!, 도쿄 슈레방문기사, Summit이라는 큰 작업들을 하면서 나는 '공동작업'을 경험해보았다. 그리고 공동 작업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작업에 힘들어하는 나의 모습을 봤다. 11월쯤,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어느 판돌은 "그렇게 힘들어하면 작업 어떻게 하려고해? 혼자 시 쓰고 혼자 작업하는 것이 좋으면 그렇게 해. 근데 계속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과 작업할 수 없어." 라는 말을 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일상적 대화 이외의 토론을 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나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것 이외의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아직은 그 이유에 대해 답할 수 없다.

나의 학습지도를 그리기 이전에,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에게 다가왔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공부들은 많겠지만, 공동 작업에서 오는 즐거움은 내가 혼자 공부할 때 보다 더 크다는 것을 이번 학기에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풀릴 고민이 아니라 그런지, 방학과 다음 학기에 대한 계획은 불투명하다. 조금의 계획이라고 한다면 1학기부터 지금까지를 스스로 회고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항상 나에게 향하였던 질문이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질문으로 넓어지자 당황스럽고 '생짜'같은 느낌으로 놀라고 있다. '이제 일어서서''초속5cm'로 주변을 보던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의 시각은 어느새 '45도에서 90도'로 증가하였고, 조금씩 더 보이는 세상에 대한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방학은 아마, 45도나 늘어난 나의 시야에 익숙해지는 시기가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다음 학기되면, 캐치스코프와 열린 작업장 안에서 나와 함께 작업할 동료 작업자를 찾길 바란다. 그리고 미상의 동료 작업자와 토론의 긴 호흡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이번 방학은 리뷰와 일기 등 지속적인 글쓰기를 도전할 계획이다.

도쿄슈레방문기

언젠가부터 나는 일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TV를 통해 본 도쿄의 길거리, 벚꽃, 신사의 이미지들을 실제로 보고 사진으로 담아두고 싶었다.
도쿄 슈레대학에 가보라는 판돌들의 제안을 듣고 꿈이 실현된다는 생각에 설레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의 일본 여행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내가 보고 싶었던 풍경은 일본에선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계절도 달랐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쿄슈레대학’에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자센터 영상팀 캐치스코프의 토토, 유란, 한결, 뿡과 나(허브)는 도쿄 슈레대학의 주최로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Shure University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 참여하게 되었다.

‘슈레(shure)’란, 그리스어로 "정신을 자유롭게 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18세 이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며, 졸업의 시기나, 정해진 학습의 기간은 없다. 슈레에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 일을 직업으로 연결하는 프로젝트와, 다른 기관과의 교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자와 도쿄슈레는 2000년도부터 세계민주교육대회(IDEC), 교환학생 프로그램, 글로벌필름아카이브 프로젝트 등 꾸준하게 네트워크를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하자는 2006년 슈레대학에서 주최한 IAFE(International Alternative Film Festival)에 참가하여, 모스코 필름스쿨, 이스라엘 하데라스쿨, 싱가폴 아시안 채널 등과 함께 공동영상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연장선에서 하자센터의 20대 영상팀이었던 V.R(Visual Rave)이 만든 '고스트 걸즈'와 ‘KTX’가 "Shure University International Film Festival 2008"에 초대되었고, 캐치스코프가 일본에 가게 된 것이다.

일본으로 출발하기 전, 우리는 ‘왜 영상 제작의 당사자인 V.R(visual rave)이 아닌 캐치스코프가 영화제에 참여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때문에 영상을 우리들의 방식으로 읽고 해석하는 학습의 시간을 가졌다. ‘고스트 걸즈’가 만들어진 배경, 한국사회안에서 10대로 살아가기, 'KTX 300km가 들려준 침묵과 함성(이하 KTX)'이라는 영상에서 드러나는 비정규직 문제 등, 어느 하나 쉽고 익숙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연습을 하는 우리에게 이번 영화제 참가는 다양한 이슈들을 담은 영상들과 작업자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 안의 이야기를 다시 되새겨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이번 페스티발의 주제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자"로, 모스코 필름스쿨의 영화, 일본 다큐멘터리 Kazuo Hara감독의 작품, 초등학교 선생님의 셀프 다큐멘터리, 슈레대학의 학생 메구미가 만든 '平和と人', 그리고 우리가 가져간 영상이 상영되었다.

상영이 끝나고, 우리는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라는 다양한 언어가 섞여 의사소통이 힘들었지만,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귀를 기울여 들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제에 참여한 관객들은 다양했다. 초대 손님뿐만 아니라, 인근에 사는 주민, 할머니 할아버지 등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보고 대단하고 느꼈다. 만약, 우리가 하자에서 영화제를 하게 된다면 영등포 주민들도 관객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제 마지막 날,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받게 되었다. "카메라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라는 메구미의 물음이었다. 나는 "카메라는 나를 돌아보게 해주는 거울이다. 나는 내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이 나를 알아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카메라를 들었을 땐 그 때의 나의 감정, 상태가 다 드러나기 때문에 카메라 뒤에선 숨을 수 없다. 그래서 나에게 카메라는 아주 소중하다."라고 하였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데 카메라가 그런 도구가 되었다면, 사회적 이슈를 다룬 이야기를 담을 땐 카메라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4박5일의 일정을 마친 뒤 도쿄를 떠나기 전 캐치스코프의 각자의 영화가 담긴 DVD를 건네주면서 다음 영화제 때는 우리의 새로운 작업들을 가지고 다시 한 번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이와 같은 교류가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이기를 기대하며, 돌아오자마자 우리는 이번 여행, 기행을 통해 무엇을 보았고, 느꼈는가에 대해 회고의 시간을 가졌다.

그 중 ‘카메라를 통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읽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캐치스코프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각자 단편영화 한 편씩을 찍어보면서 내 안의 이야기들을 꺼내보는 경험을 했다면, 앞으로는 주변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는 것, 그리고 카메라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매개체’로서의 영상작업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또한 도쿄 슈레대학의 지속적이고 다양한 네트워크들을 보며, 자신들의 학습 공간에만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초대하여 서로 학습할 수 있는 시간들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슈레대학 방문 한달 후 바로 하자에서 열린 'Seoul Youth Creativity Summit'을 경험하면서, 초대와 만남을 통한 학습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었다.

TV를 통해 기대한 일본의 이미지와 내가 직접 가서 본 모습과는 달랐지만, 친절한 미소를 머금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던 도쿄 슈레대학 사람들의 표정은 아직 내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다.

도쿄를 떠나기 전 우리의 영화가 담긴 DVD를 건네주면서 다음 영화제때는 우리의 새로운 작업들을 가지고 다시 한 번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이번 여행을 기점으로 도쿄슈레와 캐치스코프의 지속적인 만남을 기대해본다.

열린작업장 영상팀 '캐치스코프'의 허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