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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9.12 수료/Texts

도쿄슈레대학 방문기

도쿄슈레방문기

언젠가부터 나는 일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TV를 통해 본 도쿄의 길거리, 벚꽃, 신사의 이미지들을 실제로 보고 사진으로 담아두고 싶었다.
도쿄 슈레대학에 가보라는 판돌들의 제안을 듣고 꿈이 실현된다는 생각에 설레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의 일본 여행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내가 보고 싶었던 풍경은 일본에선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계절도 달랐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쿄슈레대학’에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자센터 영상팀 캐치스코프의 토토, 유란, 한결, 뿡과 나(허브)는 도쿄 슈레대학의 주최로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Shure University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 참여하게 되었다.

‘슈레(shure)’란, 그리스어로 "정신을 자유롭게 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18세 이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며, 졸업의 시기나, 정해진 학습의 기간은 없다. 슈레에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 일을 직업으로 연결하는 프로젝트와, 다른 기관과의 교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자와 도쿄슈레는 2000년도부터 세계민주교육대회(IDEC), 교환학생 프로그램, 글로벌필름아카이브 프로젝트 등 꾸준하게 네트워크를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하자는 2006년 슈레대학에서 주최한 IAFE(International Alternative Film Festival)에 참가하여, 모스코 필름스쿨, 이스라엘 하데라스쿨, 싱가폴 아시안 채널 등과 함께 공동영상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연장선에서 하자센터의 20대 영상팀이었던 V.R(Visual Rave)이 만든 '고스트 걸즈'와 ‘KTX’가 "Shure University International Film Festival 2008"에 초대되었고, 캐치스코프가 일본에 가게 된 것이다.

일본으로 출발하기 전, 우리는 ‘왜 영상 제작의 당사자인 V.R(visual rave)이 아닌 캐치스코프가 영화제에 참여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때문에 영상을 우리들의 방식으로 읽고 해석하는 학습의 시간을 가졌다. ‘고스트 걸즈’가 만들어진 배경, 한국사회안에서 10대로 살아가기, 'KTX 300km가 들려준 침묵과 함성(이하 KTX)'이라는 영상에서 드러나는 비정규직 문제 등, 어느 하나 쉽고 익숙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연습을 하는 우리에게 이번 영화제 참가는 다양한 이슈들을 담은 영상들과 작업자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 안의 이야기를 다시 되새겨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이번 페스티발의 주제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자"로, 모스코 필름스쿨의 영화, 일본 다큐멘터리 Kazuo Hara감독의 작품, 초등학교 선생님의 셀프 다큐멘터리, 슈레대학의 학생 메구미가 만든 '平和と人', 그리고 우리가 가져간 영상이 상영되었다.

상영이 끝나고, 우리는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라는 다양한 언어가 섞여 의사소통이 힘들었지만,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귀를 기울여 들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제에 참여한 관객들은 다양했다. 초대 손님뿐만 아니라, 인근에 사는 주민, 할머니 할아버지 등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보고 대단하고 느꼈다. 만약, 우리가 하자에서 영화제를 하게 된다면 영등포 주민들도 관객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제 마지막 날,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받게 되었다. "카메라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라는 메구미의 물음이었다. 나는 "카메라는 나를 돌아보게 해주는 거울이다. 나는 내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이 나를 알아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카메라를 들었을 땐 그 때의 나의 감정, 상태가 다 드러나기 때문에 카메라 뒤에선 숨을 수 없다. 그래서 나에게 카메라는 아주 소중하다."라고 하였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데 카메라가 그런 도구가 되었다면, 사회적 이슈를 다룬 이야기를 담을 땐 카메라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4박5일의 일정을 마친 뒤 도쿄를 떠나기 전 캐치스코프의 각자의 영화가 담긴 DVD를 건네주면서 다음 영화제 때는 우리의 새로운 작업들을 가지고 다시 한 번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이와 같은 교류가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이기를 기대하며, 돌아오자마자 우리는 이번 여행, 기행을 통해 무엇을 보았고, 느꼈는가에 대해 회고의 시간을 가졌다.

그 중 ‘카메라를 통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읽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캐치스코프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각자 단편영화 한 편씩을 찍어보면서 내 안의 이야기들을 꺼내보는 경험을 했다면, 앞으로는 주변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는 것, 그리고 카메라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매개체’로서의 영상작업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또한 도쿄 슈레대학의 지속적이고 다양한 네트워크들을 보며, 자신들의 학습 공간에만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초대하여 서로 학습할 수 있는 시간들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슈레대학 방문 한달 후 바로 하자에서 열린 'Seoul Youth Creativity Summit'을 경험하면서, 초대와 만남을 통한 학습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었다.

TV를 통해 기대한 일본의 이미지와 내가 직접 가서 본 모습과는 달랐지만, 친절한 미소를 머금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던 도쿄 슈레대학 사람들의 표정은 아직 내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다.

도쿄를 떠나기 전 우리의 영화가 담긴 DVD를 건네주면서 다음 영화제때는 우리의 새로운 작업들을 가지고 다시 한 번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이번 여행을 기점으로 도쿄슈레와 캐치스코프의 지속적인 만남을 기대해본다.

열린작업장 영상팀 '캐치스코프'의 허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