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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9.12 수료/Texts

2008년 봄학기 에세이 : 초속 5cm


그러고 보면 내가 학기 들어와서 처음으로 나를 소개했던 것은 그리도 두려워하던 슬램 이었다. 지난 학기 쇼하자 때 벌벌 떨면서 다 외우지도 못한 가사를 그저 줄줄 읽어댔었던 나. 간단하지만 가사를 쓰고 조급했지만 비트를 구해서 1시간 동안 연습했었다. 무슨 정신으로 가사를 쓰고 무슨 정신으로 마니에게 비트를 부탁했는지 기억나지만 부끄러워 생략하련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시즌이 제일 두근거리고 말짱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한 학기동안 이렇게 변할 수 있구나 를 실감했었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도 내가 변하길 바랬다.

3월
'즐겁겠다, 재밌겠다, 우와 프로젝트 진짜 많아."
바쁘고 프로젝트가 많은 것이 좋다. 잡생각 할 시간이 없고 빡빡한 일정을 보면
내가 꽉 차가는 기분이 들고, '와 내가 이렇게 뛰어 다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좋았다. 나에게 뛴다는 것은 그만큼 걸어 다닐 여유 없이, 바쁜 일정과 할 일 많은
이상적 주니어2학기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좋은 기분들을 가지고 하자 안을 뛰어다녔다. 확실한 목적지를 가지고 그 곳을
향해 누구보다 빠르게 앉아 있고 싶어서 뛰어다녔다. 체력의 소모가 느껴진 건 침대에서
자기 바로 전 골아떨어질 준비를 할 시간이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힘들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한다는 것 자체를 멈춰버렸다가 정확할 것 같다.
회상해보면 그 때 나는 내 체력이 100이라면 100을 쏟아 붓고 200을 쏟아 붓고
내 모든 기운까지 하자 안에 쏟아버리려고 한 것 같다.

3월 1-2주 즈음 이었을 거다. "요새 너 나이스하다"는 말을 들었다. '나이스? 좋은 거죠?
좋은 거래, 지금 좋은 거? 그럼 지금처럼!' 바보처럼 단순하게 뛰어다니기만 하면 좋은 건
줄 알았다. 지금에서야 그 나이스란 잘 뛰어다녀서 나이스가 아니란 걸 알았다.

그래도 뛰기만 하면 몸 굴리는 막노동인 것만 같아서 다른 것을 추가시키려했다.
열린작업장 안의 다른 죽돌들을  보는 것. 어떤 상태고 어떤 표정을 가지고 어떤 일정을
가지고 있는지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평소 얘기를 안하던 토토, 포디, 마니, 웅에게 대화신청을 한 적이 많았다. 그렇지만 내가 정말 이들과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만 생겨나면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노력은 했지만 자꾸 내 질문에 꼬리를 잡고 내 안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기만 해서 도저히 남을 볼 수가 없었다. 그나마 나의 머리를
명쾌하게 해준 얘기가 있다."한 학기 자기 보는 것도 버겁다는 녀석이 남을 보겠다니..."
지금 와서 보면 욕심이 너무 컸었다. 선택의 순간이 온 것이다. 나를 완전 정복할 것이냐,
남을 볼 것이냐. 그래도 한 학기동안 봤던 나를 보는 게 쉬울 것 같아서
‘나 완전 정복’을 택했다.

완전정복이라는 것은 단순히 내가 어떤 사람이야-라고 정의내리는 것이 아니라 캐치스코프안에서 나의 존재를 찾기였다. 그래서 더욱 나의 감정관리를 하게 된 것 같다. 나라는 존재의 얼굴이 미치는 분위기들은 업이 되기도 다운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그리고 나의 위치에서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었다. 고민을 하고 말을 하는데
내가 나의 단계를 무시하고 인턴 혹은 뿡의 단계에서 말을 하려고 욕심냈었다.
그래서 그 뒤로 더욱 힘들고 지쳐갔다.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형으로 말하게 되는 것은 그 때는 몰랐고 에세이를 쓰는 지금 알게 되었다.
일찍 알았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에 조금 슬퍼진다.

그리고 걸바를 다녀오다.

그렇게 지쳐가게 되었을 즈음 난 길찾기 걸어서 바다까지를 참여하게 되었다. 솔직히 좋은 공기마시면서 쉬고 싶었지만 '나 혼자'간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얼마나 긴장되던지, 뭘 인터뷰할까 뭘 찍어야 될까, 생각만 해도 머리가 하얘졌다. 내가 다른 사람들 없이 잘 할 수 있을까? 너무 걱정되고 무서웠다. P.V(Promotion video)중 걸바 파트를 나 때문에 망쳐 버릴까봐. 하지만 시간은 날 그렇게 고민하게 놔두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걸바 숙소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생각할 시간 없이 최대한 많은 것을 찍어가야 했다. 일단 많이 찍으면 못 찍었다는 아쉬움은 덜해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리가 가기 전에 질문리스트를 주셨지만 정작 보면서 인터뷰는 못했었다. 거기서 공책을 볼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를 향해 걸어가고 나는 그런 그들을 찍어야 됐으니깐, 나는 그들의 포지션과 달랐다. 나의 길찾기 걸바를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자신의 속도,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정말 정확한 목표를 향해 걸어가면 됐고 난 그럴지도 모를 그들을 찍으러 갔기 때문에. 그리고 길찾기 환영단과의 포지션도 달랐다.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한 길찾기들을 환영해주고 기운을 주고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게 해주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런 그들을 보면서 나는 걸바에서 나의 포지션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여담이지만 인터뷰를 더 많이 할 걸 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시간을 돌려 그 장소에서 다시 촬영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지금까지 내가 찍어온 영상을 못 보고 있다.

그런데 하자에 돌아오자 P.V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지쳐 보이고 나의 포지션이 바뀌어 있었다. 내가 빠졌기 때문에 바뀌게 된 것에 이의는 없었지만 당황스러웠다. 난 어디로 가야될까. 어디에 있을까? 뭘 해야 될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마음에 병과 몸의 병이 났다. 나를 미친듯이 닥달하고, 의심하고 내가 나에게 스트레스를 줬다. 그래서 스트레스 받은 몸은 밥을 먹고 소화를 시킬 수 없었다. 나의 배는 격렬하게 움직였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장염이었다.

그렇게 걸바에서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포지션을 찾아 머릿속에 고민을 가지고 집에서 쉬었다. 생각을 더 많이 할 수 있을거라 기대했지만, 몸이 쉬니 머리도 쉬어버렸다. 걱정됐다. 그 나이스하다는 허브가. 지금은 어떨까?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에게도 '나 지금 잘하고 있어?'라는 질문을 던졌다. 질문을 받는 사람들은 어떤 맥락인지 몰라 당황했었고, 나는 내 자신을 계속 의심하고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의 결론은 '잘 하지 못함'이었지만 그 생각이 맞는건지 틀린건지, 확신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봤던 것 같다. 결국 결정의 순간을 남에게 돌려버린 것이다.

5월

열심히 달려도 어디가 목적지인지 모르겠다. 머릿속 하얘지고 흡연실 죽돌이 되가는 것 같았다. 떠돌아다니는 건달 허브. 그 때의 나를 설명하자면 이러지 않았을까?

그 뒤에 유리와의 면담을 하며 '그 나이스한 시간의 나로 그 나이스 했던 시기의 나로 돌아갈 순 없다. 지금부터 다시 선을 긋고 여기서부터 출발하자'라는 결론을 냈지만, 실천이 되지 않았다.

뒤를 보면 항상 무서운 것이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도망치다가 내가 지칠줄은 몰랐다.

그리고 지쳤다는 걸 알면서도 인정하기 싫었다. 하지만 감정이든 체력이든 감성이든 뭐든 내 얼굴로 표현하는 나는 숨길 수가 없었나보다. 유리가 나를 부르거나 내가 유리를 찾아가거나, 이런 저런 얘기를 지난 학기보다 많이 한 것 같은데 기억에 남은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경험상 느낌이 오는 것은 , 때가 되면 그 말이 다시 들리리라.


솔직히 이번 학기 뭘 했는지 모르겠다. 헛짓하고 헛소리하고 아- 아니다. 뭔가, 어떤 얘기, 항상 뛰어다니긴 했었는데 뭘 위해서 그렇게 바쁘고 숨 가쁘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리 바빴나? 정신없었다. 에세이에 나오지 않은 프로젝트들까지 포함 이번학기는 8개의 프로젝트들이 있었다. 가끔 참여하는 시너지 프로젝트까지 총 10개였다.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지난 학기에 비해서 거의 2배정도의 프로젝트 양인지라 나에게는 무척이나 버겁게 느껴졌다. 모든 것을 '잘'하고 싶다는 욕심에 나의 체력이 고갈되어가고 있었다.
과제도 참여도, 질문도 이해도 내가 얻어가는 지식의 양도 그리고 나중에 후기 모임에서
내가 느낀 것을 말하는 것까지 잘 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이제 무언가를
알아가고 있는 나에겐 정말 그것은 정말 큰 욕심이었다.

6월
'프로젝트들이 진행되어가도 뭐가 변해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하루하루만 살았지 일주일 한 달을 산 것 같지 않다. 어떤 말을 써야 될지 막막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있었다. 정리할 자신도 담아낼 자신도 없다.
정말 위에 있는 글처럼 하루를 사느라 하루들이 모여져 있는 1주일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생각들을 흘려보내면서 나의 한학기가 저물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프로젝트들은 마감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도 이제 생각들을 정리해야 될 시간이 온 것이다.

일단 프로젝트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후기를 준비하고 뭘 해야 될지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많은 프로젝트라 그런지 내가 해야 될 많은 것들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정리하게 되면서 내 자체가 정리되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에세이를 쓰는 6월이 나에게 학기의 시작으로 느껴진다. 아니 학기 시작이 아니라 생각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다시 일어서서가 아니라 이제 시작인 것처럼.

난 지난학기에 일어섰다. 그리고 동물처럼 일어나서 뛰려고 하다가 엎어질 뻔 하고.
난 뛰는 게 아니라 걸어야 한다. 아직 걷는 방법조차 제대로 터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물론 생략해도 좋은 단계가 있다. 그렇지만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난 아직
뛸 준비가 되지도 않고 걸을 준비를 이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다음 학기 내가 뛸 준비까지 하길 바라지 않는다. 다음 학기엔 발자국을 떼어서 느리게 조금이라도 걷기를 바란다.

방학이 기대된다. 다시 방학이 되면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상상되지 않는다.
다시 앉아있을 수도, 뛰려고 시도할 수도, 느리게 걸으려다가 내 발가락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겠다. 방학을 맞이하고 있을 나에게 다시 에세이를 보라고 권하련다.
그 때 자기 속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면서 지치지 않고 힘들지 않고 즐겁게 혹은 즐기면서
혹은 즐겁게 목적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길 권한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난 빨리 달리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겠다.

나의 속도는 광속도 시속도 분속도 아닌 벚꽃 잎이 떨어질 때의 속도처럼
‘초속5cm’일지도 모르니깐.

다음 학기엔 어떻게 지내야 될까 아직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학기에 지친 것 같다. 내 체력을 모르고 하루하루 뛰어다니기에 너무 바빴으니깐. 방학동안 좀 더 생각을 정리하고 쉬는 시간으로 잡아놔야겠다. 물론 머리가 마냥 쉬게 놔두지는 않을 참이다. 며칠은 쉬겠지만 다 쉬어버리기엔 방학은 짧다. 우선 방학계획을 짜야겠다.

[Optical english / Globish]

고백하건데, 언어 프로젝트는 다른 프로젝트들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었다. 처음 나의 프로젝트 목적은  summit을 준비하고자 하는 목적이라 영어의 대한 압박감도 느껴졌었는데, 4월의 summit이 9월으로 옮겨지면서 'summit을 위하여! '라는 목적의식이 조금 떨어진 것 같다. 그리고 개인적인 목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토토와 Free talking Only english'. 너무 개인적이라 자주 묻혀가는 목표이기는 했지만, 일주일의 4시간 동안 영어로만
말을 하다 보니, 프로젝트 끝날 즈음에는 토토와 대화하는 것이 조금 자연스러워 졌다.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영어에 대한 압박감이 줄어들어 더 이상 무서운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영어가 들리면 더 이상 질겁하지 않아 영어에 대해서 두려움이 감소되어 부담스러운 존재에서 친해지고 싶은 존재로 포지션이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영어가 단순히 어렵고 싫은 것이 아니라, 조금 앞서가긴 했지만 내가 구사할 수 있는 말 중의 하나로 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다.

이제 다음 학기에는 summit이 날 기다리고 있다. 재밌는 작업을 하는 것도 목표이기는 하지만,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얘기를 해보고 싶다. 토토에게 통역을 부탁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바디랭귀지도 있고 짧은 영어도 있으니 9월의 summit은 확실히 즐거울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하자인문학 III 이화여대 탈경계 인문학 기획강좌]

이 강좌가 있다는 것을 처음 듣고, 그냥 막연하게 듣고 싶었다. 이 강좌를 들으면서 내가 말을 좀 더 잘할 수거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말을 잘한다는 것을 떠나서, 10개의 강좌들이 너무 재밌어보였다. 어떤 식으로 진행될까 생각하면서 제일 두근거렸던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실은 강의에서 너무 많은 것들이 나와서 당황스러웠다. 나의 선입견들을 깨주는 말들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나오는 말 모두를 받아 적느라 강사님의 얼굴을 못 본 것은 물론이요,
모르는 것들을 이해하는데 시간을 쏟느라 질문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캐치스코프 안에서 자체적으로 한결과 유란과 같이 진행하는 기획강좌 세미나 Plus on tues 중 내가 진행하던 세미나에선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기가 힘들게 진행했었다. 나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웠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다른 시선을 가지고 공부하는 세계를 본 것 같다. 그래서 에세이를 쓰는 지금, 막상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던 프로젝트고 많이 알고 싶던 프로젝트였지만, 실상 무엇을 배웠는가, 라고 말하라고 하면 난 아마 강사님이 해주셨던 말들을 외워서 말할 것 같다. 어떤 얘기고 어떤 맥락에서 나온 얘긴지는 모르니깐 생략하고 질문도 절대 거부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이 강좌를 들으면서 내가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미술과 시에 대해서 생각들이 많이 바뀌었다.

미술은 너무 어려웠었다. 휘황찬란한 액자에 유화로 된 그림들이 미술인 줄만 알았는데
현대로 오면서 미술은 내가 생각했던 미술과는 너무 달랐다. 저것을 미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값이 비싸면 다 미술일까? 라는 생각들로 미술은 정말 액자 틀도 보기 싫었다.
그런데 전혜숙 선생님께서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미술이다.'라고 말 하셨을 때 편파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일수도 있지만. 그 말 한마디에 난 다리에 물파스를 바른듯 한 느낌을
머리에도 받게 되었다. 참 시원하고 좋았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시를 싫어했다. 무조건. 무슨 말인지도 모를 말들이 책으로 나오고 사람들 입에서 나오고  뭐가 좋은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 기획 강좌에서 몇 몇 강사 분들이 말하는 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생각으로 듣게 되었다. 그러다 진은영 선생님께서 화를 풀어주는 꽃가루 시를 센에게 읽게 하였는데, 시를 들으면서 정말 내 화가 꽃가루처럼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부드럽고 상냥하고 포근한 시였다. 한 편의 시를 읽었을 뿐인데 이렇게 감동적이라면 그 많고 많아 스쳐지나간 시들이 나에게 다가오게 된다면 난 정말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폭식이라 말할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시를 읽고 있진 않지만 조금씩 시를 읽으면서 시를 보고 있다.

그리고 강의를 할 때마다 놀랬던 것이 기억난다. 기호학과 본다는 것의 의미 신화속의 젠더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보고 행동하고 말하는 것에 이런 의미들이!!' 라며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들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적어도 꽉 막히지는 않았구나, 라며
나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기획 강좌가 말하는 것에 영향을 주기도 했지만 생각하는 데에 영향을 주었다.
여기선 많은 양의 정보들이 빠른 시간동안 머릿속에 들어오려고 한다. 그리고 나의 세미나는 영 아니었던 것 같은 Plus on tues에서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그 생각들을 정리해야 된다. 일주일의 넉넉한 시간이 있었지만 체감시간 3일 동안에 정리하기엔 조금 많은 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빨리 정리해야 될 필요가 있었고 어떤 방법이라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생각정리가 조금 빠른 속도로 진행되게 되었다.  아마도 이제는 생각정리 하는 것을 세공하고 세공하면서 생각이 말로 전환될 때 단어선택을 신중하게 해야겠다.

다음 학기에도 기획 강좌가 있으면 좋겠다. 그 때는 일찍 커리큘럼을 보고 기초지식을 조금이라도 쌓아두고 기획 강좌를 청강하며 질문을 하고 싶다.

 
[주말영상학교]

프로젝트가 시작 전, 주말영상학교 프로젝트를 아주 무척이나 정말로 참여하기 싫었다.
내가 영화를 만든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지...... 흥미도 관심도 없었고 그저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뿐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 만드는지 감도 안 잡히고 엄청 힘들다는데, 시작도 전에 겁을 먹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정말 바라고 기대하면서 프로젝트를 신청했다. 캐치스코프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영화에 대해서 얘기하는 경험을 해보는 것.
이것이 나의 프로젝트 목표였다.

금요일엔 원과 영화를 보고 토요일엔 윤성과 연출에 대해서 그리고 1scene  1cut과
3cut, 5cut을 찍으면서 크리틱을 받고 수정해가고 단편 찍는 것을 준비해갔다.

원과 하는 영화보기는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B급 영화, 초기의 영화 즉 내가 평소에
보지 않았던 봐도 모르고 넘어갔을 영화들을 보게 되었고, 봤던 영화들을 Shot by Shot하거나 왜 그 사이즈에 그 앵글에서 찍게 되었을까를 생각하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캐치스코프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 아쉽게도 우리에게 얘기할 시간이 많지 않아 확신은 못하지만, 만약 우리에게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재미있는 얘기가 많이 나왔을 것 같다.그리고 금요일에 영화를 보고 분석하고 어떻게 보면 제작자의 입장이 아니라 관객의 입장이 되었다가, 다음 날로 넘어가면 내가 제작자의 입장이 되었다.
이 상황은 무척이나 재미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카메라로 찍고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일상을 관찰하는 것은 재미있었다. 특히 일상을 관찰하는 것은 내가 보는 것이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보니 내 방에서도 많이 웃게 되었다. 그렇지만 시각화 시키는 것, 즉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들을 카메라로 담아 연출하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찍은 영상들이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자주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확실하게 답이 나오지 않아서, "내 영화를 찍었다” 라고 말할 수 없다.
나에게 영화라는 것은 한 편의 소설이다. 그 얘기의 길이가 단편이면 단편,
장편이면 장편으로. 그래서 내가 만든 것을 영화라고 말하기에는 나의 이야기가
충분하게 담겨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계속 '찍고 있다'.

그래서 이번 촬영은 잘 하고 싶다. 대사도 있고 나의 얘기를 가지고 재밌게 만드는 것을 시도해보고 싶다. 실은 그 전까지 만드는 것을 재밌게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항상 더 찍을 걸이라고 후회하고 시나리오도 엄청 끙끙대면서 쓰고
(이 에세이도 마찬가지로 끙끙대면서 썼지만) 어깨의 힘을 주고 많은 것들을 심각하게만 받아들인 것 같다. 즐겁게 찍는 것. 즐겁게 편집기를 가지고 놀고 싶었는데 내가 너무 멀리 돌아가려고만 하는 것을 알게 되어서 이번 촬영에는 조금 다르게 하고 싶다.
그래서 더 특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 얘기를 영상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 이렇게도 되는구나, 그리고 관객이 있다는 것에 놀라고, 사람들의 비판적이거나 호의적인 감상, 두 가지를 들을 때마다
'내 영상을 이렇게 봐주다니. 감사합니다!'라며 항상 들떠있었다.

내가 만든 것을 보여준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영상학교 하면서 덜어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크리틱에도 단련된 것 같았다. 물론 아직 나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받아드리는 것을 경계해야 되지만, 그 크리틱을 생각하며 시나리오나 편집을 할 때마다 '와-!'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크리틱을 해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시나리오에서도 이미지들이 보이는 다른 사람들이 조금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런 다른 이에 스테프가 되는 것. 나는 촬영하는 것을 좋아하고 해보고 싶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칭찬을 한 번이라도 들었던 사운드 스테프를 희망했다. 물론 영상학교를 하면서 나의 촬영이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사운드에 대해서 더욱 호감이 생기고 하고 싶다는 생각들이 마구마구 들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두 편의 단편영화의 사운드 스테프가 되었다.

아직 촬영을 하지 않은 지금 너무 두근거린다. 다른 사람을 도와준다는 것,
나는 이 사실에 더욱 두근거리는 것 같다

다른 시각이란 참 재미있는 것 같다. 내가 보는 것과 같은 것을 볼 수도 있지만 다른 것을 봤을 때의 그 놀람이란, 대게는 상상을 초월한다. 저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라며. 음 그러고 보면 영상학교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의 시나리오 보는 것 이었다. 감탄사뿐이었지만 나와는 너무 다른 생각들이거나 소재가 비슷해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에 정말 놀래기도 했다. 이래서 사람은 알 수 없다고 하는 게 아닐까?

아무래도 이번 단편영화를 찍어봐야 확실하겠지만, 아직 나에게 영화라는 분야는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 단순히 싫지도 좋지도 않고 만들 때 설레는 분야이긴 하지만 정말 잘 모르겠다. 자신이 없어서도 있지만 정말 잘 모르겠다. 영화를 찍는 것도 내가 만드는 것도, 생각을 정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