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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8월 7일


생각나는대로 쓰겠다고 쓰는 일이라는데, 사진을 찍는 일이랑 비슷하게 노래를 저장하는 일이랑 비슷하게 메모를 남기는 거랑 비슷하게 사실은 기억하고 싶어서 쓰는 것이기도 하고 잊고 싶지 않거나 이게 진짜였다고 남기고 싶어서 더 쓰게 되는 것 같다. 10년전이라고 하면 예전에는 진짜 옛날 옛적 같고 그랬는데, 이제는 90년대도 아니고 2000년대의 일이 되고 그 때도 기억하고 있는 것들. 그러니깐 상대적으로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일들이 벌어지던 시기다. 그냥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됐다. 

많이 하는 얘기 중에 하나가 시간이 해결해준다 라는 건데. 이 말 자체는 사실은 별로 효과가 없다. 시간이 아직 지나지 않기도 했고, 시간만 지나서 해결되는 건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시간이 흐르는, 뭐라고 할까 아무런 의식이나 생각도 없이 흘러서 어떤 일이 해결된다기 보단. 당시에 올라왔던 감정들이 차차 사그라들고, 다른 이야기들도 들어보게 되고, 다른 일들을 겪으면서 다른 입장이나 생각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면서 그때보다 다른 일이 중요해지거나 중요해지지 않으면서 시간이 지나가는게 아닐까 싶어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라는 말은 저런 시간들이 지나야 해결한다는 것 같아서. 

N분쓰기랑 비슷한 느낌이다. 생각나는데로, 그 생각이 남아있는데로 왠만하면 고치지 않고 쓰려는. 어떤 사람이 그렇게 글을 쓴다니, 그럼 힐링이 되느냐고 물었는데. 사실은 이 글쓰기의 목적은 이것저것 나중에 그것도 지나서 이유를 붙여보는거라지만, 그냥 쓰고 싶어서. 아니 그냥 쓰는 거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이다. 어제는 누구랑 이야기하다가, 내 상황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 때가 아니냐, 방향을 생각해보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거나, 방향이라는 말이 입에 남아서 한동안 입 속에서 웅얼거리고 있다던가 하는 상황들이 오랫만이라 생소하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다른게 필요한게 아니라, 사람 그러니깐 다 알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지 않는 거리의 사람정도랑 대화하는게 필요한게 아닐까. 

내일은 대한극장에 가서 그랑블루를 보는데 의자를 살짝 눕힐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물이 차오르는 장면에서 그걸 누워서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 에이, 그게 아니어도 그랑블루를 대형 스크린과 빵빵한 스피커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어서 좋다. 특별하게, 좋아한다고 하는 영화들은 사실 그 영화가 좋은 게 아니라 그 영화를 봤던 사람들과 그 때의 분위기라든가 그 후의 이야기들이 그 영화에 대한 기억으로 아니 인상으로 남아서 좋은게 아닐까 싶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중경삼림은 추억에 쩔어서 보게 되는 영화같다. 그러고보니 이번 여름에는 매번 했던 홍콩, 정확히는 왕가위의 80-90년대 영화 상영,을 보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충분히 눅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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