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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세제

세제를 바꿨다. 엄밀히 말하면 매번 세재를 엄마가 사다가 브랜드만 같은 걸로 내가 사오는 바람에 세제가 바뀌어버렸다. 옷장에서 며칠을 묵어두던 옷이 아니라 새로 빨래 하고 말려진 옷을 입을 때마다 어색하다. 외출이라도 하는 날에는 지난 밤에 다른 사람 집에서 자고 온 것처럼 이상하다. 
 그러고 보면 연애를 할 때 제일 조심스러워하던 아니면 설레는 때는 집에 가게 될 때였다. 초대를 하든 안 하든, 갑작스럽게 가던 간에 남의 집에서 자고 나면 옷 구석구석에 그 집 냄새가 묻는다. 예전에 그런 적이 있었다. 사귀던 애가 집에 와서 자고 갔던 날에, 그러고는 나중에서야 헤어지게 됐는데 이상하게 방에서 그 애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웠었으니 베게에 냄새가 베었으려나 하기도 했지만, 새로 꺼내는 옷마다 그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이상했다. 잘 찾아보니 그 애 옷 중에 하나가 옷장에 있어서 그랬다. 내 속옷더미에, 나라면 절대 사지 않을 디자인의 속옷 하나가 있었다. 빨래를 하면 원래 냄새나 떄나 하는 것들이 씻어 내려가서 바껴야 하는건데 냄새만큼은 쉽게 변하는게 아니구나 싶었다. 
 여행을 갔다온 날, 제일 먼저 반겨주는건 사실은 사람보다도 집의 냄새 같은게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말로, 어서와/고생했어 라고 이야기 해도 그 집이든 방이든 들어갔을 때,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고 이 사람과 함께 계속해서 있을 냄새를 알게 되면 내가 정말 돌아왔구나, 여기에 도착했구나 라고 실감하게 된다. 낯선 곳에 왔다. 라는 것도 냄새로 알게 되기도 한다. 

 기억하고 싶은 것도 기억하기 싫은 것도 그것들은 의식적으로 생각하거나 안 생각하려고 애쓸 수 있지만, 냄새는 감각인거라 틈을 파고들어서 무심코 들어온다. 무심결에 들어와버리면 나는 어찌할 줄도 모르고 그냥 무장해제 당하는 것 같다. 냄새로 얻어맞는 느낌이라, 그래서 특히나 연애를 하면 누가 집에 오는게 싫다. 어차피 잘 되지도 않는 분리가 방에서도 누워서도 되지 않는다면 그건 어떻게 생각할 때 좀 끔찍하다. 냄새엔 벽이 없고, 방이 없고 문이 없고 창이 없어서 그대로 기억되는 것 같다. 그래서 막을 수가 없고 피할 수가 없고 줄 수없고, 일부로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향수라는 소설을 그렇게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무형이고 정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가도 확실하게 있다고 느껴버리는 걸 잡아보겠다고 버둥거리는 느낌이 안쓰러우면서도 그래서 더 좋아했던 것도 같다. 

좋아하던 애랑 클럽에서 마주치려던 준비하던 날에 언니는 준비해야한다면서 향수를 뿌려줬다. 이곳저곳 뿌려주면서 가슴팍에도 뿌려야 한다고 그러길래, 이건 원래 뿌리는거냐고 물었더니 쓸 데가 있는 날에는 뿌려야 한다고 그랬다. 그 날이 오늘이라며. 나중에 그 애 집에서 옷을 빌려 입었다가, 다음 날 빨래통에 넣는 날에 향수냄새가 진하게 남은 것에 속으로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는 걔도 그랬던 것이, 빨아도 냄새가 안 지워진다며 너 향수 냄새가 계속 난다고 그랬다. 이건 낭만적이거나 로맨틱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그렇게 냄새들이 남아가고, 기억하게 되고, 기억되게 된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어떻게 붙잡아둘 수가 없으니깐, 그 냄새가 사라지는 게 아쉬워서 꽁꽁 싸매두거나, 밀봉하는 것마냥 보관해두던 날들이 옛날같고 어렸을 때 부리는 오기 같다. 요새는 모기퇴치팔찌의 약발이 쉽게 안 달아났으면 해서 밀봉할 것들을 찾는 것만 하기 때문이라 그럴까. 다른 사람의 냄새를 그렇게 피하고 있어서 그러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내 방에서 담배를 피면 향을 피웠다. 향 냄새랑 담배냄새랑 비슷해서 그렇게 해뒀을까 생각해보면, 담배냄새는 향 냄새보다 더 탁하고 독해서 냄새가 오래남는다. 향은 쉽게 흩어지고 길게 남지만 뭉게거리면서 남는 느낌이라 바닥에 깔리는 느낌은 아니다. 그냥 그 공간을 다 꽉 채워버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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