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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10살무렵


어렸을 때 기억을 써보려고 하는데 생각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내 기억은 사건 순으로 기억되지만 그 순서는 없고, 그 때도 없다. 그러니깐 나는 "아 이거 n살 때 그런거야" 라는 식의 답을 하지 못한다. 어렸을 때, 라고 이야기하면서 뭉뚱그려지는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뒤죽박죽이기도 하고,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게 정말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을까 싶은 것들이 있다. 가령 턱에 상처가 나있는 것에 대해서는 난 2층에서 떨어져서 그렇다고 기억하지만 엄마는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다가 엎어져서 그렇다고 기억하고 할머니는 고꾸라져서 그렇다고 기억한다. 다쳤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게 어떻게 일어났는지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한번쯤은 최면으로 과거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진실여부에 대해 말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억해보고 싶은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가족끼리 싸워서 한 집안이 호적에서 파였을 때는 언제고, 내가 가장 좋아하던 개가 죽었던 때는 언제고 하는 것들 말이다. 

어느 때를 기점으로 사진도 없는 시기가 있다. 아, 이건 언제야 라고 쉽게 기억할 수 있게 년도와 날짜도 적혀있는 친절한 일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날들이 더 많다. 때문에 사진을 보고 얼핏 기억나는 것들이 확실하지 않아도 나는 그걸 기억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애초에 거의 없기 때문에 그 기억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지 않을까, 그게 사진을 보고 얼핏이라도 잠깐이라도 생각나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다. 




난 또 이사진이 언제 찍혔는지 까먹었는데, 장소와 배경이나 주위 사람들을 보아하니 초등학교 4-5학년 때가 아닐까 싶다. 동생이 생기고 어느정도 걔네가 나이가 들어서 어린이집을 다닐 정도의 때 말이다. 동생이 태어난 이후에 확실한건 원래 있었던 사촌동생들이 없던거다. 내가 기억하기론 내 생일날이었고, 가족들이 다 모이는 날이었을 때 잡채는 계란지단과 고기 당근과 시금치를 휘날리면서 공중을 날아다녔고 큰 소리와 깨진 접시 조각같은 것들이 바닥에 널려있었던 날이 있었다. 방에 숨어든 아이들은 그 소리가 그치길 기다렸고 큰엄마는 얼굴에 케찹(본인 주장)을 뭍히고는 이제는 괜찮다고 안심시키던 날. 작은아빠는 안경이 깨지고 사촌동생은 언니네 아빠도 그럴꺼라고 이야기하고 사과하거나 다음을 생각 할 틈도 없이 그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없게 된 날. 그런 날은 분명 동생이 생기기전이었을꺼다. 왜냐하면 그 이후로 언제부턴가 난 동생이 있으면 좋겠어, 동생 만들어줘를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하니깐. 

 그렇게 생긴 동생은 기대만큼 나랑 잘 놀지도 않았고, 부모의 관심을 독차지했어서 일수도 동네의 관심을 독점해일 수도 있겠지만 하여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애기 때야, 뭐든 신기하고 그래서 업어도 키우고 그랬지만 아이들이 클 수록 난 동생들을 보기 힘들어했던 것 같다. 그런 동생들이 엄빠의 맞벌이로 어린이집에 맡겨졌다. 3학년 때까지는 자주 놀던 친한 친구들이 있었지만 이사로 뿔뿔이 흩어지고, 친한 친구가 딱히 없었을까. 어린이집에서 가는 플레이월드(요즘말로는 뭔지 모르겠다)에 같이 갔다. 아, 이때까지는 책임감이 있었구나. 왜냐하면 동생들이 처음 어린이집에 가게 된 날, 차로 오기로 한 시간에 오지 않자 난 동생들을 데리러 어린이집에 뛰어갔다. 하지만 나보다 먼저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데려갔었고, 난 내가 혼나기 싫어서 뛰어가다가 갑자기 나오는 택시에 치였었다. 발의 살깣이 벗겨졌었는데, 그걸 엄마한테나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혼자 할아버지가 쓰던 붕대로 칭칭 감고, 아마도 울었던 것 같고, 왜 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혼날까봐 그랬던 것 같다. 미련한 아이라고 그랬었지. 

여하튼 그런 때여서 보호자 자격이 아니었나 싶다. 플레이월드는 나름 나도 가고 싶었고, 놀고 싶었는데 (나중에 가서 친구들이랑 가게 됐지만 그 땐 나이가 들어서 재미가 없었다) 동생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던건 아니었고 그냥 챙겨야해, 다치면 안돼, 혼자 이것저것 걱정하면서 이때부터 오만상이 얼굴에 절여진 것 같다. 아님 말고. 그때의 사진이다. 처음으로, 언니가 되어서 동생들을 돌보러 나갔던 출장언니 시절같은 때. 


어떤 사람을 보다가 그 사람이 꾸준히 글을 쓰는 것에 다른 사람이 말을 했다.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면 다른 사람이 무단으로 쓸 지도 모른다고. 나도 쓰길래 생각해보다가, 이건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라 희소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참 많이도 얘기하고 얘기할 이야기들이지만, 그때마다 공감하거나 맞아 하는 이야기를 듣는 건 유사경험이라는 게 그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 아닐까. 
 굳이 이 이야기들이 특별해지게 된다면 그건 이 일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이 일들이 나라는 사람한테서 일어났고 그런 사람이 지금도 살아있기 때문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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