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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부고


며칠 전 아는 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니 듣지 않았고 뉴스피드에서 봤다. 정말 뉴스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난데없이 알게 된 것 같아서 이상했다. 쉽게 누군가 죽음을 가장한다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하는 쇼잉들이 많은데 그건 진짜였다. 제주도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제주도는 내가 지금에 있는 것이 될 수 있게 된 포인트였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을 만났고 말을 하고 들었고 친구와 싸우고 그 뒤에나 가서 화해하고 실수하고 사과하고 풀고 웃고 울고 그랬던 곳이었다. 


 그 언니의 꿈은 퇴사를 하고 동생과 카페를 차리는 것이었다. 이름도 정해두고 메뉴도 하나하나 이야기해주면서 같이 있는 사람들이랑 이 메뉴는 어떻고 그 메뉴는 어떠니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라는 이야기를 농담반 하지만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아니면 같이 유성우를 보면서 날을 새기도 했고, 어쩐지 춘향이가 된 난 별명에 또가 들어가는 언니를 사또라고 부르면서 수청이니 뭐니 하면서 장난 치고 놀았다. 서울에 다시 올라와선 연락도 하지 않았다. 틈틈히 뜸뜸이 소식을 보기도 했지만, 그건 누군가 좋아하는 페이지를 보는 것처럼 그냥 그랬다. 


 그렇게 의미는 있어도 중요하지는 않았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죽는다는 생각은 매일 한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면서 담배를 끊으라는 친구들한테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고 너스래를 떤다. 알콜중독이니 뭐니 해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말아버리는데, 정말 자다가 죽어버렸다. 

 호상이니 어쩌니 하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고 그게 말이 되는 말일까. 좋게 가는 죽음이 뭔지 모르겠다. 죽는건 그냥 죽어서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는건 살아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아직 살아있고 죽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상상할 수 밖에 없으니깐. 엄마는 종종 할아버지가 죽었던 이야기를 한다. 죽은지 4일만에 깨어난 할아버지가 들려주던 저승얘기는 입에 자주 하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서만 자주 나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억은 잘 안난다. 매번 흘려들으니깐. 난 아직 살아있고 그걸 가깝게 상상하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니깐. 


 하루종일 피하려고 했다. 그 죽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있다는 티를 내고 있을까봐 아무것도 보지 않거나 티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 곳에서. 이것저것 참 여러가지를 먹고 움직였지만 운동하지 않았고 글쓰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많은 걸 한 것처럼 그랬다. 잠이 안 와서 글을 쓰려고 했었다. 하지만 글을 쓴다고 잠이 올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모를 일이다. 나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니깐. 


사실은 그렇다. 그렇게 별거 아니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슬프다. 많이라고 하기엔 이건 많이로 말할 수 없는 양도 양이 아니기 때문에 쓸 수 없고 크게는 이건 크기로 잴 수 없는 것이라서 아닌데 엄청이라고 하면 이상한 말 같아서 그냥 슬프다. 어쩌면 어릴 땐, 할 수 있지만 할 수 없어서 속상하거나 슬펐다면 이젠 할 수조차 없어지는 것들이 생겨서 슬프다. 생리가 터진다. 생리를 시작한 적이 없어서다. 그건 항상 나에게 당해지는 일이지 20년이 지나도 이럴 것 같다. 무뎌지는 것들은 사실 하나도 무뎌지지 않았고 그냥 삭히고 묵혀두는 것이라 갑자기 터진다. 

사실은 아무런 일도 없었지만 어떤 일들이 계속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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