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리고 오늘.

증산동에 살았던 때를 생각하면 비가 오는 날이 왠지 많은 것 같다. 

실제로 통계를 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기억엔 그렇다. 학교에서 집까지 15분이면 가던 길은 사실은 동네의 절반이었고, 가로지르고 이곳저곳 쑤시지 않으면 30분이면 다 돌아보던 동네였지만 어떤 날은 우산도 없고 비가 마구 오던 날. 저학년의 친구들은 학교 앞에서 엄마나 할아버지가 우산을 들고 기다려주던 날. 우산 없는 애들끼리 집까지 가던 날이 있었다. 실내화 주머니를 머리에 쓰고 달리고 달려도 비가 오는 것 같아서 저 집 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가 저 빌라 앞에서 숨 좀 돌리고 이제 골목을 돌아서서 새마을금고 앞에서 있으려는데, 왜 비는 쉴 때마다 더 많이 오는 것 같은지. 제일 집이 가까워서 우리집에서 숨 좀 돌리자 했는데 집에는 엄마가 있었다. 따듯한 단팥죽을 줬던가, 아니었다면 그만큼 추웠다가 따뜻해졌던 것 같다.

비가 오면 반지하였던, 3층집이었던 집은 언제나 곰팡이가 울었다. 사실은 곰팡이 냄새가 어느 집에서나 나는 냄새인 줄 알았다. 아주 옛날엔 집에 물이 들어오고 그걸 퍼내던 기억도 있던 것 같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 때문에 작은 동이를 놓기도 했던 것 같은데 이건 진짜인지 아니면 그때 집이랑 상황에 맞는 기억으로 조작한건지 알 턱이 없다. 하지만 곰팡이는 진짜인 것 같다. 천장이 하얀 집을 보면 어색하니깐

복실이가 죽어서 묻던 날은 살짝 비가 왔다. 할아버지는 경찰한테 걸리면 안된다면서 뒷산에 찾아가지도 못하는 곳에서 개를 묻었지만, 사실은 경찰이 왜 쌩뚱맞게 나왔나 싶어서 생각해봤는데 그건 옆집에 살던 경찰아저씨였던 아저씨가 내가 태어났을 때 선물이라고 줬던 강아지였기 때문이다. 복실이는 언제 죽었을까. 그 개는 내가 태어나던 날 나랑 같이 태어났던 개였고, 대체로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을 같이 보낸 것 같다. 어찌나 똘똘한지 이름만 부르면 바로 달려오고 멍청한 구석도 없었던 것 같다. 동네엔 대문을 열어놓는 집이 많았는데, 집에 없어도 그 개가 집에 돌아올꺼라는 걸 알아서 사실 풀어키우고 그랬다. 내가 살던 골목에는 또또라고 예쁜 개가 있었는데 지금으로 치자면 복실이와 또또는 그 동네의 제일 예쁜 개였다. 남개들은 그 두 개를 따라다니고 그래서 그랬나 사이가 안 좋았다. 난 또또도 복실이도 좋아했는데, 어쩌면 내가 좋아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밤이 되면 동네 골목을 다 울리게 "복실아~"라고 소리쳤다. 어딘가에서 들으면 들어오라고, 보고싶다고 걱정된다고. 그 개는 쥐약을 먹고 죽었다. 그럴만큼 나이가 들어서라고 엄마는 말했었다. 


요즘은 비가 쏟아지게 내린다. 뭘 씻어내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쏟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비는 열을 식히고 비가 이만큼 자주, 많이 오는건 열이 많다는 건데 세상이 얼마나 더운지 가늠해보기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오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원, 진해  (0) 2013.08.06
10살무렵  (0) 2013.08.04
자기소개  (0) 2013.08.03
부고  (0) 2013.08.03
8월 3일  (0) 2013.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