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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1일


담배에 불을 붙이고 드디어 글을 쓸 생각을 한다. 첫문장은 생각할 때랑 다르지 않다. 꿈을 적어야 할 이유는 없다. 꿈을 적고 싶다는 욕구만 있다. 꿈은 강렬할 수록 쉽게 잊혀진다. 신기한 일이다. 눈 앞에 생생하던 장면들이 쓰면 쓸 수록 사라진다. 떠올리지 않으려고 하는 게 꿈을 아끼는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며칠을 편하지 않은 곳에서 자서 그럴까, 아니면 그런 곳에 다녀와서 처음으로 제대로 잠을 잔 날이어서 그럴까. 스물셋을 생각하던 어젠 스물셋의 기억들이, 2013년의 일들이 모두 뒤섞여서 꿈으로 나타난 것만 같았다. 그 중에서도 이야기하지 않았으며, 그 땐 중요했으나 언젠가부터 기억하지 않으려고 한 건지, 안 한건지 모르겠지만 잊게 된 것들이 꿈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 때 만났던 사람도 나오고, 그건 충격이었고, 왜냐하면 생각하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어제 불현듯 갑자기 생각났기 때문에. 이번 해의 목적은 어떤 생각이든 일이든 원인을 찾는 게 아니라 다른 이유들을 찾는 것이다. 그러니깐 하나의 사건에 하나의 원인을 찾는 게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나고 이 일을 그렇게 받아들이게 된 것에 대한 여러 가지 이유들과 정황들을 생각해보고자 하는 일이다. 어쩌면 원인이 하나만 있을거라는 생각 때문에 더 힘들었던 게 아닐까 싶어서. 꿈을 적으면 적을 수록 연해지거나 흩어지는 것 같은 건 꿈에 대해 제대로 묘사하지 못하지만, 그 묘사로 인해서 꿈에 있었던 색깔이니 소리들이 하나의 단어나 문장으로 규결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꿈에서 노래가 나온 적은 극히 드물다. 그것도 꿈에서도 생경해서 그 소리에 이끌리듯 나가, 정말 평소의 모습 그대로 멍하게 노래만 듣게 된 건 처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자각몽에 대해서, 한 두어번 정도 꿔본 것 같은데 꿈에서도 사실은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 어제 꿨던 꿈은, 꿈에서 생각하길 이 이야기는 지난번에 꿨던 어느 꿈의 전편과 같은. 영화로 따지자면 시리즈 물에서 3편의 전편인 2편과 같은 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서도 1편은 기억나지 않았다는 게 내심 재밌던 부분이었다. 그게 재밌다고 꿈 속에서 생각했으니깐. 꿈에선 오래 만나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됐는데, 어쩐지 내 주위에 모든 사람이 사실은 그 사람을 알고 있었다. 모두가 소개시켜주려던 사람이 하필 그 사람이었던 경우. 하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들은 꿈에서의 전제였고, 때문에 조금 더 빨리 만났더라면. 그 이야기를 예전에 해줬더라면 하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게 꿈에서의 대화. 그런 걸 대화라고 하니. 그런 이야기를 하고 나서 들었던 노래였는데, 정말 좋았는데 무슨 노래인지 모르겠다. 처음 들은 노래였는지도 모르겠다. 피아노 한대와 첼로 한대를 연주하는 40-50대의 풍체가 좋은 흑인 두 명이 중절모를 쓰고 그러나 각진 양복은 입지 않고 노래를 했다. 거긴 무슨 재즈바도 아니었고, 테이크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카페마냥 작은 공간에 노래하는 그 사람들과 그 앞의 소파. 그리고 밖에서 그 노래를 듣고 오늘도 좋은 연주를 들려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아마 나는 거기의 이방인 같은 거였나 보다. 그 장소도, 그 전에 있었던 곳도 내가 알던 곳은 아니었으니깐. 왜 내가 있던 곳에서 나오게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꿈 속에서의 장소이동은 그 때의 상황에서는 맥락이 있던 것도 같지만, 깨어나면 아무 이유도 아니라서 쉽게 잊어버리게 된다. 모두가 잘 아는 너희가 서로는 정작 결혼한 부부같다니. 이런 대화였던가. 

한번쯤은 보고 싶다. 한번쯤만. 관계를 정리하는 비슷한 패턴은 어떻게든 끊어내고 두고두고 생각한다는 건데, 그런데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있어서 이 경우는 왜 그런지 이유를 생각해보면 재밌을 것 같은데, 관계를 정리한다는 건 그 이상의 어떤 이상이나 발전이 안 보일 때. 두고두고. 이러다가, 저러다가 그런 식으로 계속 반복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다 떠나서, 이미 끝났는데 끝났다고 말 못해서 그런 거라는. 그러니깐 그럴 일이 얼마남지 않았을 때. 난 헤어지고 나서 다시 만나는 걸 제일 이해를 못하는데, 첫째론 사람은 그렇게 빠르게+확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과 대체로 헤어지고 나서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을 때 상대를 생각하는 건 현재의 상대가 아니라 과거의, 한창 좋았을 때의 그때를 생각하는 것 같아서 그렇다. 아무리 그래도 서로 없으면 안되는, 그래서 싸우는 것도 헤어지는 것도 만나는 과정이라고 하는 것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라서. 그러니깐 그때, 키워드라든가 좋아하는 작가라든가 문장이니 영화니 노래니 하는 것들이 비슷해서, 닮아서. 그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니, 우리는 둘만 있니 어쩌니 하는 것들이. 지금으로써는 할 수 없는 것들. 왜냐하면 머리가 너무 크는 바람에, 그건 하나의 취향이지 어떤 성격이나 생애의 결론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그것들로 인해서 충분히 싸우고 과하게 싸울테니깐. 

아. 또 겁먹어서 못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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