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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퀴어캠프 후기

"나라도, 성별도, 가족도 선택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가 살아가야 하는 삶 또한 선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 - 동인련 신입모임 후기 중


최근 계속되는 1박2일의 일정 중 스타트를 끊었던 건 퀴어캠프였다. 트위터에서 세랭의 강연이라는 한 트윗을 보고는 밑도 끝도 없이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 무식하게 신청하고, 설레었다. 

2개의 강연을 듣고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아마 이렇게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필터링 없이 혹은 내가 이렇게 말해도 되나 하는 긴장감이나 두려움없이 말하기는 동인련 모임 이후로 처음이었을 것이다. 미학 강연 말고는 사실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이미지와 재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강의였고 사실. 강연도 캠프도 레크레이션도 모두 좋았던 건 그 내용 뿐 아니라 앞서 말한 내가 얘기를 하는데 필터링이 없어도 된다는 안도감이었을지도 모른다. 

신입모임에서 내가 느꼈었던 것은 어쩌면 세상과의 단절감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공간과 얘기들 속에서 내 현실은 동떨어져있으며 좋은 만큼 시간이 짧았지만, 좋았던 만큼 좋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괴리감이다. 나는 이걸 누구와 나눌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뭘 하며 살아야 할까 누구와 살아야 할까 와 같은 질문들이 진짜 범람하게 되는 걸 느끼게 된다. 아마도 동인련 모임이 있던 날은 친구네들, 내가 다녔던 학교의 졸업식이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졸업식의 오퍼를 본 친구와 그들의 졸업을 도왔던 친구와 만나기로 했었지만, 갈 수 없어졌었다. 무서웠던게지 그곳도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깐. 

크게 실망하고 화내는 친구들에게는 아무런 말도, 사실 말은 했지만 그 말이 무슨 말이었는지 누구도 몰랐기 때문에, 하지 못하고 꾹꾹 참아가지고는 결국은 그 친구 하나가 있을 법한 곳에 가려고 했었다. 근데 들어가지도 못했고, 말도 못해서 다른 친구한테 전화해서 울다보니 이 놈은 내가 성폭행 당한 줄 알고 인천가는 길에 택시타고 날아왔다는 후문이.

여하튼 많이 무서웠던거다. 좋은 만큼, 좋았던 만큼 그게 없어질 거라고 미리 생각했으니깐.

생각보다 허탈하지 않았다. 허망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모임도 하고, 학교에서 여러명에게 얘기도 해서 그럴까. 사실 다녀와서 별로 안 허전했고, 참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했고 앞으로 두개의문도 보러가고 성평위 사업도 생각하고 학교 모임에 대해서 포기하지말고 계속 하면서 이런거 저런거 해보자고 생각하게 됐어. 재밌잖아. 얘기나누고 하는거. 더 많이 만나고 싶고, 그렇게 내 삶을 구성하고 싶어지잖아. 스스로가 신기하게 느껴지니깐 더 탄력을 받는 것도 같고. 이놈의 삶은 내가 시작하지도 않았고, 캐릭터를 고르지도 않았고, 맵을 선택하지도 않았고, 아이템을 고르지도 않았는데 시작해버린 것이니께 플레이만 할 수 있는거라고. 그럼 더 재밌게 살아보는게 좋지 않을까 ㅎㅏ고.

하고 싶은 말 해보면서, 꾸는 꿈이 현실이 되가는 걸 보면서, 같이 하는 어른들, 친구들 함께 즐거우면서

투쟁의 근저에는 분노가 아니라 열망이 있는거니깐.

그럼 좀 더 꿈꾸고 살아가도 괜찮은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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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금을 하는데 돈이 없어서 엄마한테 대리입금을 부탁했다. 엄마는 어떤 캠프인지, 뭐 하는 곳인지 참으로 궁금해하셨지.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했었다. 아마도 기억하기로는 홍콩을 다녀왔던 작년 10월쯤. 신나서 떠들고 있으니 잘다녀오라는 얘기를 하더라. 나중에는 어땠냐고 물어보는데 아주 신나게 얘기했던 것을 기억한다. 말할 수 있는게 엄마라서 좋다는거다. 아빠는 캠프가 무슨 캠프냐고 꼬치꼬치 라는 표현을 쓸 생각을 하게 불편하게 느껴졌었지만. 괜찮아, 아직 떄가 아닌 것 뿐이니깐. 흥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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