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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조각2

1. 공연한 찌질함이 느껴져서 뭔가를 쓰는 걸 꺼렸다. 공연하지는 않았지. 시간이 참 빠르다고 생각했다. 내가 벌써 23살이라니. N살이라는 것에 특별함이 있는 건 18살이나 24살정도지만, 그 나이가 아니고서야 내가 N살이라니 하는 말들은 여전히 예전이랑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숫자가 늘고, 숫자에 따른 책임감 같은 게 생기는 것 같다고 느껴서 그럴까. 동안이라는 소리에 좋아하고, 쯩을 꺼내는 일이 반가워졌다. 물어보는 일보다 그냥 지나가는 일이 훨씬 많아진 시간들이니깐. 최근에는 1학년인 줄 알았다는 현 1학년에게 이야기를 들었던게 그나마 좋았다고도 느껴지는 것 같다. 

새로운 것보단 익숙한데 다른 걸 보는 거가 익숙해지는 것 같다고 쓰는데 1. 익숙한데 다른게 결국 새로운게 아닌지 2. 그게 익숙해지는 건 또 다른 모순이 아닌지 싶어진다. 

2. 조각보를 이어서 하나의 그림이 되고 이야기가 되는 걸 퀼트라고 부른다. 조각이라고 붙여넣으면 그럼 그 조각은 나중에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

3. 갈 때까지 갔다는 감각같은 건 없다. 갈 때까지 갔다라고 정의했을 때, 그 마지막으로 수렴되려고 하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고 무엇인지 모르고 언제인지 몰라서 알 수가 없다. 시간의 개념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있다던데, 언제까지 카이로스를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살려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4. 예전엔 생각도 못했던 건, 하고 싶은게 없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고 싶은 걸 모르거나, 해야 할 일들만 생각해서 그렇지 누구나에게나 있는거라고 아직 모르고, 찾지 못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에 들어와서 제일 놀란 것 중에 하나는 말로만 듣고 글자로만 봤던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들이 그것도 흔하게 많이 있다는 것이었다. 뭘 하고 싶냐고 물어볼 때, 모르겠다 고 얘기하면 그건 너무나 당연하게 하고 싶은게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오히려 하고 싶은게 많다고 하면 놀란다. 왜냐하면 하고 싶은게 많은 건 흔한 일은 아니거든. 그래서 뭘 할꺼냐라고 했을 때, 정말 하고 싶은 걸 이야기하면 그건 취미에서 그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예전엔 그걸 따박따박 하나하나 말에 각주를 달아버리듯이 이야기하고 따져댔지만 이제는 진이 빠져서 '아 저사람은 그냥 저런 사람'이라고 해버린다. 그 당연한 전제에 대해서 따질 기운도 없고, 그렇게 해야 할 만큼 이라고 계산한다. 이건 기승전비다. 슬픈 이야기가 됐다. 

5. 돈을 벌면서 제일 많이 투자하, 아니 투자라고 할 수 있나 싶은건 옷을 엄청 많이 샀다는 거다. 색깔별로, 타입별로 종류별로 가득찬 옷장을 볼 때는 뿌듯한 기분보다는 있다. 여기에 있다. 라고 생각한다. 내것이 없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반응일지도 모른다. 혹은 뺏겼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반응일지도 모른다. 방을 치우고 방을 정리하고 재정비하면서, 사실 제일 많이 생각했던건 누구나 올 수 있지만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방이었다. 그렇게까지 어마어마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주 깨끗하게 치워버린다면 누군가의 흔적이 진흙창에서 방금 나온 발자국만큼 선명하다면, 그걸 신경쓰는 걸 안다면 아무나 들어올 수 없어지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건 아니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어쨌든간에, 그런 느낌이 있다. 왠지 생각하면 그렇게 된다. 그런 스스로가 슬퍼지기도 한다. 안쓰러워지기도 하고 살짝 애처롭다는 생각도 스친다.

6. 술을 마신다고 생각할 때는, 편하게 이야기하고 떠들면서 혹은 혼자서 우울에 터지더라도 내일 모레 그 다음을 생각하지 않게 마실 수 있는거. 술이 환상이고 꿈이라면 현실이 개입되어선 안된다. 현실이 되버리면 그건 주정이 되버리고, 술꾼이 되고 취객이 되버린다. 술이 완전히 꿈이 되고, 그 꿈을 계속 꾸고 있을 때 그런 상태에서 술을 마실 때야. 그래야 술을 마신다고 이야기하고 기억하게 된다. 술을 안 마신다고 했는데, 정작 술을 마셨던 걸 생각해버리면 그걸 왜 기억하지 못했을까 싶어지는 때 이야기하고 싶지만, 사실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을 이야기다. 

7. 기억하는 걸 쓴다는 건 오만이다.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을 쓴다는 것도 오만이다. 나는 기억하고 있었던 일을 기술하면서 동시에 쓰고 있는 현재를 쓸 수 없다. 이 경험에 대해서 혹은 기억이나 현재에 대해서는 뭐라고 쓰려고? 모르겠다.

8. 그런 의미에서 기억이 조작되기 전에, 생생하게 날 것을 적어버려야 한다. 언젠가 편집되고 조작되고 변형되버리면 그건 내 기억이 아니게 된다. 그건 기억이 아니라 추억이라거나 감상이라거나 하는 것들이 된다. 순수함이라는 개념은 0과 같이 개념에서는 있지만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9. 그런 의미에서 많은 기억은 가족과 함께 연결되거나, 가족에 의해 강한 인상으로 남아 기억되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기억하는 것들이 있다. 
그렇게 무력하고,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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