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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슬펐다

나는 ~처럼 슬펐다.

나는 간판처럼 슬펐다.
쓰잘데기 없이 밤새도록, 낮에도 밤에도 계속해서 이유없이 원래의 목적도 없이 슬펐다.

나는 버스처럼 슬펐다.
꽉 차거나, 텅 비거나, 한산하거나 
중간은 없는 것처럼 극단으로 치닫아야 뭔가가 되는 것처럼. 그게 원래 모습인 것처럼 슬펐다.

나는 병처럼 슬펐다.
없을 땐 당연했던 것이 생기니깐 마치 태어나서 처음 겪는 것처럼 앓고나선, 또 다시 잊어버리면서 슬펐다.

나는 나처럼 슬펐다.
이야기는 할 수 있어도 설명할 수는 없는 것처럼, 어떤 말로도 부족한 것 같지만 사실 어디에나 있는 것처럼 흔한 것처럼
말할 수 있는데 말할 수 없어서 슬펐다.


나는 자기소개처럼 슬펐다.
나는 수많은 문장들로 나를 설명하지만 나를 설명할만한 말들을 찾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해 썼지만, 정작 내가 무슨 말을 쓰는지 잃어버렸다.
나를 소개하기 위한 것은 내가 아닌 나를 설명하기 쉬웠다.
나를 위해서 썼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해서 썼다.
나는 그렇게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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