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9.9.12 수료/Essay

에세이 1-6

 

1. 이제 시작하지 않는다.


언제나 과거를 회상하고 이제 시작하겠다는 이야기로 나의 에세이들은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라는 말이 어색하다. 뭔가 끝마쳐보지도 않았고 어떻게 무엇을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매학기 마다 어떤 것을 배웠고, 크거나 작은 변화들이 나에게 있었다. 앞으로 가기도 했고 뒷걸음치기도 하면서 분명 성장했고, 잘했을 때도 있었지만 찌질했을 때도 있었다. 내가 할 일과 하고 싶은 것, 괴롭지만 내 얘기를 하면서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속에 있었다.


이건 하나의 단편들로 이뤄진 옴니버스 영화가 아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했고 끝나려면 18년보다 긴 시간이 남은 내 이야기다


2. 매체


-만남

하자에서 배운 것 중에서 사람들과의 ‘만남’은 빼놓을 수가 없다. 서로의 의견을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취향조사와 같은 이야기만 하고, 만남을 고대하다 만나게 되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만 하는 관계를 맺어왔던 나에게, “어떻게 생각해” 라고 질문하는 작업장학교의 사람들과, “왜 그렇게 생각해?” 107호의 영상 팀이 낯설지 않을 수 없었다. Catch scope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에 대해, 왜 라고 같이 고민하고, 대답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팀이었다.

내가 열린 작업장 안에서, 모두가 모이는 자리에서 했던 이야기는 모두 107호 안에서 해본 이야기였고, ‘검은 방’ 처럼 안락하고 편안하면서 절대로 편안하고 늘어지지 않아야 했던 곳이었다.


그렇지만 처음 나 스스로에게 “왜 영상 하는 거야?”의 대답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좋아서는 아니었다.

Focus on interview, 주말영상학교, 길찾기 걸어서 바다까지 촬영, 검은 방 제작


1. Sexuality


비디오 꼴라쥬, Pink haja, 하자 영문판 약속, 페미니즘 공부모임

더운 날의 더운 기억들

3. 공부


도쿄슈레 방문기, 이화여대 탈경계 인문학 2학기, 4학기


에필로그.


뜨거운 여름은 끝나고, 나는 그동안 내 가슴을 동여맸던 붕대를 풀었다. [마주선 뒷모습]에서는 그동안 내가 부정하던 여성성을(다른 사람의 얘기를 잘 들어준다, 잘 감동하고 잘 운다, 감수성이 예민하다.) 뒷모습으로 그리며, 그동안 부정하고 숨겨왔던 나를 다시 바라보고,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앞모습'도 보여주기 싫었던 '뒷모습'도 나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하기까지 4년이 걸렸다. 이제 이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 내 사람들과 공유하기까지의 시간의 괴로웠으며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가 자신을 받아들이긴 예전보다 어렵지 않았으나, 사람들 속의 나 는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상상으로 두려웠다. 남/여 로 구분할 수 없는, 정상적이거나 보편적이지 않은 여자 같지도 남자 같지도 않은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나마 성별의 의무에 대해서 자유로운 하자에서 나가면 '남자역할'을 요구하면서 '여자 같기'를 바라는 하자 밖이 싫었기 때문이다.


Pink haja "10대들의 성과 연애에 대해 솔직담백하게 이야기해보는 토크쇼"


이상하게 Pink haja를 떠올려보면 계절이 여름이다. 분명 겨울에 진행된 프로젝트였고, 뜨거운 열기에 에어컨을 켜둔 기억은 없는데, 몸은 어쩔 줄 몰랐고 방은 더웠고 이야기는 Hot했다. 그 작은 방 안에서, 남자는 이래서 안돼, 여자는 이래서 안돼 라고 뒷담화처럼 다뤄지던 연애이야기, 가출의 이야기가 되었던 부모님의 상하관계, 친구들간의 비밀얘기 중 꼭 들어가는 성관계 얘기까지, 모두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로 다뤄지고 이야기되고 있었다.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연결되는 부분에서 마구 말하면서, 가깝지만 어색하고 불편한 '성'에 관해 조금 깊게 생각해보게 된 것 같다.


가장 놀란 것은, 1:1 혹은 1:3으로 진행되던 소규모의 얘깃거리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며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의 고민이었던 성정체성과 성적지향은 다른 얘기처럼 마구 나오거나 깊은 이야기까지 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짧은 시간, 짧은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함께 즐거워 하거나 화를 내었고 다들 그리고 나도 이전과는 다른 생각으로 성을 바라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두려움 속에 마무리했던 쇼하자는 끝났고, 이제 새 학기를 맞이하는 문이 열렸다. 나는 기대하게 되었다. 이정도의 관심, 감정, 지식이 있다면 나중에 우리가 함께 모여 다시 이야기를 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고민은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고, 고민을 경험과 이야기로 풀어내는데 Pink haja가 디딤돌이 되었다. 이 생각은 후에 '페미니즘 공부모임'을 만들게 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북카페가 리모델링되며 책장들의 위치가 바뀌기 전, 내가 정말 좋아하던 자리가 있었다. 앞  뒤에는 이론서가 놓여있고 왼쪽에는 일본소설, 우측에는 또 다른 책장이 놓여져 있어 북카페에서 가장 빛도 사람도 없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작은 소파를 끌고와 책을 읽고 있지면 시간이 흐르는 것도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매일 북카페로 가며 사서와 안면을 트고 북카페 단골회원이 되었더니 '길찾기'가 끝났다. 길찾기의 담임이었던 모모의 평가서에선 "잠이 안와요 라는 이야기가 한 학기 면담 내용의 전부였으니 암담합니다." 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감정이입하며 공감할 순 있었다. 책 속의 주인공이 나라면 이라는 상상을 하고, 주인공이 되었을 때 “나라면 이렇게 했을꺼야” 등등, 매일같이 상상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를 '말' 할 수는 없었다. 대단한 이야기에 묻혀 내 이야기가 사라지기 싫었고, 진지한 얘기인 척 아프고 힘든 얘기를 하면서 '환자'가 되기도 싫었고, 이야기를 하게 되어도 적당히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를 더 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기억으로 2년 동안 제일 더웠던 여름날에 207(?)호에 모여 '인터넷 방송국'을 시작으로 캐치스코프란 팀이 시작되었고, 나 토토 유란이 영상팀으로 들어왔다. 다른 팀과 달리 우리는 '주니어'보다는 대학생들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생이어서가 ‘적당히’ 하려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라고 생각했을 텐데, Focus on interview project를 시작하는 회의에서 '이것이 사회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Focus on interview 프로젝트 회의에선, 허토란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서로에게 왜? 라는 질문을 스스럼없이 했다. 게다가 회의를 하는 시간동안 졸지도, 멍하지도, 얼굴해 "지루해"라고 쓰지도 않았고, 이야기가 끊기는 거나 침묵은 길찾기 회의 때보다 길지 않았다. 길찾기 때와는 다르다. 그 때는 서로가 많이 다르고, 잘나고 잘난 사람들만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니어가 되고나서 그것들을 '고만고만'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초반에는 회의 분위기가 어색해서 집중도 못하고 졸기도 많이 졸다보니 놓치는 게 너무 많았다. 거의 대놓고 졸아두곤 사람들에게 '어떤 내용이었어요?' 라고 물어보는 것은 무책임하고 뻔뻔하고 회의록을 잘 읽어보면 되겠지 하면서 회의록을 읽어보면 도대체 '왜' 이런 내용이 나왔는데 연결이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이렇게 계속 지낼 순 없었다. 길찾기를 졸업했다고 떡하니 증명서도 받았고, "편집에 감이 있네" 라는 말을 들었던 방학 프로젝트 이후 편집은 해보지도 못했다. 아직 하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았다.


필기부터 시작해야 했다. 지금 말하고 듣게 되는 것을 놓쳐서는 안됐고 나중에 봐도 알아들을 수 있는 전문(全文)이 필요했다. 그리고 '왜' 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막히지 않고 대답하고 싶었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하고 결정할 때 왜라는 질문을 시작하게 되었다. 떠벌거리던 입이 조용해졌다. 생각을 하는 것인지 할 말이 없는 것인지, 알 수 없어보인다는 코멘트를 받았다.


나는 케이와 토토와 함께 이언희 감독의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었다. 왜 이언희 감독이야? 라고 물어본다면 그 때의 나는 '김점선씨의 인터뷰가 취소되고 맥없는 상태에서 누구든지 인터뷰하고 싶었다.' 라고 쓰고, 실은 지루하지 않은데 부드러운 그녀의 영화에 반해서 궁금했다고 말하겠다.


중학교 때 나는 '영화 감상 부' 였다. 그러나 거기서 배웠던 것은,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유흥거리로 기억하게 하는 것이었다. 영화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고난 후 어떻게 각자에게 기억시킬까 하는 것을 말하지 않은 채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영화를 보는 경험만 했을 뿐이었다. 이언희 감독님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첫번째 작품인 [ing]를 보았다. 그전과는 다르게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만나고자 하는 사람, 영화의 이야기를 만들고 구성하고 우리에게 보여준 사람을 생각하면서 영화를 봐야했고, 영화가 끝난 후 토토와 내가 리뷰를 하며 각자의 시선에서 영화를 '해석' 해보았기 때문이다.


"인터뷰 당일, 꼬까옷을 입고 긴장감에 입술을 자꾸 물어뜯는다. 빳빳했던 질문지는 어느새 손 때문에 구겨져있고, 꼬까옷은 너무 예뻐서 나를 덥게 만든다. 긴장감과 더위 짜증스러움과 설레임, 걱정과 기대 그 작은 103호 내 작은 몸 안에 너무 많은 것이 들어있었다. 감독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파란옷과 진한 인상, 머릿속이 다시 하얘진다."


인터뷰가 끝나고 회고하며 "이언희 감독님에게 후광이 비췄다." 라고 말했고 그 후광을 본 사람은 나 하나만이 아니었다. 다음 영화를 준비 중이라는 감독님의 영화가 궁금했고, 한국 예술 종합학교에서 만들었다는 단편이 또 궁금했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감독님의 싸이월드, 생일과 좋아하는 영화를 몇 알게 되었지만, 인터뷰로 알게 된 것은 두터운 파카에 뒤덮여있던 사진이 아닌 실물을 보는 것만큼 더 많은 것이 있었다. 현장에서의 지휘자가 되는 감독, 자기에게 갇혀있기 보다는 소통이 되어라 하는 의미에 화살표를 남기고 간 이언희 감독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이렇게 가볼까 저렇게 가볼까 하지 않고, 열심히 하다보면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감독이 되었고 영화를 찍었다. 내가 만나보지 못한 김점선 씨는 매일 매일 그림을 그리셨다. 해야지 라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것이 생활이고 일상이고 습관이었다. 나는 그 누구를 만나든 사람들에게 후광을 발견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만나려던 사람들 중 하나도 자신의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었고, 각자의 길과 경로에서 그것을 삶에 녹여 살아가고 있었을 테니깐 말이다.


인터뷰 영상을 편집하면서 다시 한 번 편집에 관해 칭찬을 받았다만, 내가 영상을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아직 해보지 않은 것이 영상에서 너무 많았고, 영상이라는 매체의 특성도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알지 못했다. 궁금했다, 이것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시선

: 눈이 가는 길. 또는 눈의 방향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허브는 어떤 사람이다 라고 할 때 나에게 붙는 형용사를 붙이기 위해서 노력했다. 물론 그것은 만화책에서 베낀 역사 없는 캐릭터이거나 뜻을 설명할 수 없는 멋있는 사람의 부분을 가져온 것이었지만. 어떤 허브가 되기 위해선 캐릭터를 모방하거나 부분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작 무엇을 가졌는지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의 나는 열심, 심각, 예민 이라는 이름이 붙을까?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 시선이 아니다. 나만의 관점 이다.


주말영상학교를 하며 4년간의 성숙과정 이었던 [마주선 뒷모습] 같은 이야기를 꺼낼 자신이 없었다.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는 기억과 생각들, 특히 생각들을 영상 속에 담고 싶었는데 막상 영상을 찍어보면, 이것은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기호로 된 상형영화였고 전달할 수 있는 것은 하고 싶은 것에 비해 너무 적었다. 다행히 단편 영화를 찍기 전, 이화여대 탈경계 인문학 팀과 만나 지식을 쌓고 하자작업장학교 Promotion video 걸어서 바다까지 파트를 촬영하러 가게 되었다. 어떤 이야기를 하기 전 나의 시선이 필요했고 더 이상 현실을 영상으로 찍는 '기록용' 이 아닌 '영화'를 찍고 싶었다.


한 번 걸어서 바다까지를 경험했고, 대게 친구들이 물었던 질문에 대답하고 싶었다. 친구들은 "그거 극기훈련이야?" 라고 물었지만, 그 이상의 것이 걸어서 바다까지 과정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걸어서 바다까지는 같은 목적지를 가진 사람들의 여행이었다. 그리고 같이 자고 먹고 씻고 걸으면서 상대방과 만나는 방법을 알게 되고 자신의 속도를 찾아 걸으며 자기만이 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지게 될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걸어서 바다까지에 관한 나만의 의견이었지만, 긴장과 찍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재보지 않고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었다.


걸어서 바다까지에는 '공부의 과정' 이 담겨있는 것 같다. 같은 목표(궁금한 것을 해결)을 향해 많은 사람이 출발한다. 처음에는 같이 갈 수 있지만, 어느새 차이는 벌어지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사람, 혼자 걷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주변을 보는 사람, 발을 보는 사람 등 서로의 다름이 보인다. 처음에는 힘들다가도(지속성을 시험하는) 계속 걷다보면 한결 가벼워진 몸이 길을 걷고 있다. 그러다보면 내가 어느 정도 걷는지, 어떻게 걷는지를 알 수 있게 되고 어느새 '바다'는 눈앞에 있다. 바다(궁금증의 답)는 상상했던 것처럼 멋질 수도 있고, 의외로 별로 일수도 있지만 바다에 도착한 것으로 여행은 끝나고 이젠, 다른 여행을 시작한다.


그것처럼 공부는 계속 해야 했다. 질문은 계속해서 생기고 그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선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표현해야 하니깐. 이화여대 탈경계 인문학에서는 듣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강사님의 말을 녹음한 듯한 기록과 기억은 도움이 될 것이지만 내 것은 아니었다. 단순한 이유다. 나는 강사님이 지금껏 공부한 시간의 반도 하지 않았고, 지금 들어서 머리로 알았기 때문이다.


많은 지식을 쌓고 듣고 언어를 배우는 것은 중요한 것이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지적허영' 이라는 무서운 함정인데, 그렇게 들은 것을 자기의 지식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실생활과 만났을 때 대부분 "어라? 이게 아닌데.." 라며 부서지고는 한다. 자신의 경험과 텍스트와 연결 지어 예전보다 크게 바라보는 힘이 필요하다. 안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무언가를 알게 된 후 현실을 보게 되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다가온다.


그래서 처음 [빨간약] 시나리오를 쓰며 '해피엔딩' 으로 끝난 나의 가족이야기는, 수정되며 '해피하진 않은' 이야기로 바뀌게 되었다. 행복한 중산층 가정의 3딸 중 맏딸은, 행복해보이지만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출하고 싶은 만큼 연출되진 않았지만, 적어도 소녀/맏딸/언니/딸 의 외로움 중 하나는 드러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라 뒷바침하는 경험과 시선이 있었겠지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기까지 '탈경계 인문학'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익숙한 것을 다르게 보고 자기와 연결지점을 지어보는 것. 시나리오를 쓰면서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어떻게 연결할까 를 생각하면서 담아내고 쓰지는 않았지만, 지금 다시 영화를 보면 '자위적인' 영화임에는 틀림없지만 더 이상 자기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게 알았다고 해서, 나에게 오는 것들을 텍스트로 읽을 능력이 조금 생겼다고 해서 공부는 자연스럽게 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하고 있으면 뭔가 되겠지 라는 태도론 할 수 없었다. 이건 비단 공부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2008년 가을학기가 시작하기 전, 도쿄슈레대학에서 주체한 Tokyo Shure University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 haja Visual Rave가 제작한 'KTX : 300km가 들려준 침묵과 함성'과 '고스트 걸즈'가 초청되어 현재 하자의 영상 팀으로써 영화제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와 이것을 어떻게 정리할까 하던 도중 밤비에게 기사의뢰를 받게 되었고, 9월에 진행될 서울 청소년 창의 서밋이 끝난 10월 기사를 마감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기사는 11월에 완성되고야 만다. 3가지 이유였다. 서밋 기록촬영 영상을 편집해야 했고, 공동의 경험을 어떻게 기록할까 고민하느라 한 문장 쓰고 하루 보내는 식으로 기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게으르기도 했고 고민하느라 시간을 다 잡아먹기도 했다. 결국 기사는 방향을 바꿔 '방문기' 형식으로 글을 쓰게 되었지만, 아직도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프로젝트에서, 공공적인 목적으로 위해, 마감을 생각하며 일을 하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방문기가 완성될 때 즈음, 일본의 페미니스트인 우에노 치즈코 선생님이 하자센터를 방문하였다. 선생님은 '경계에서 말하다.' 라는 조한과의 서신교환으로 짜여진 책을 펴내셨고, 그 때 하자센터를 추천받아 오게 되었다고 하셨다. 짧은 일본어 실력으로 2번째 하자투어를 하게 되었고, 선생님은 긴장하지 말라고, 에세이의 제목(주니어2학기)이 참 좋다, 열심히 한다. 라는 둥 만난지 얼마 안된 나에게 많은 칭찬을 해주셨다. 선생님이 하자센터를 떠나고 나서, 다시 107호에 돌아왔을 때 방문기를 쓰며 '괜찮아, 아직 시간이 많아.' 라고 했던 말과 오늘 들었던 말은 성질이 다른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기 위안과 만족용 말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 언제까지 자기만족하며 이것을 부여잡을 순 없었다. 그렇게 마무리가 되어가고, 교정을 받아가며 [도쿄슈레방문기]는 완성되었고, 우에노 치즈코 선생님과의 만남을 생각하며 학기말 에세이 [만남을 통해 배우다]를 썼다.


이 후 Save my city라는 프로젝트가 열린작업장 내에서 진행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학기의 시작과 거의 동시에 진행된 서밋 이후 늘어지고 멍하던 죽돌들을 Warm-up! 한 프로젝트다. 여기서 나는 처음 팀장 을 경험해보게 되는데, 공동작업을 할 땐 책임이 무거워 피하다가 '책임'을 맡아버리는 위치가 되니 평소에도 하는 긴장의 100배는 더 한 것 같다. 게다가 Pre-production을 하며 다른 팀보다 느린 진행상황에 속이 답답하기도, 왜 안되나 조급하기도 했다. 각자에게 할 일이 생기고 탁상공론(=회의)를 마칠 무렵에야 일이 진행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점검하는 회의를 자주 가지지 않아도 전시와 영상의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서로 아구가 맞는 팀이었고, 그 덕분에 '공동'에 질리고 무서워하던 내가 공동작업을 즐기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회의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기 보다는 PD였던 세이랜의 의견이 반영되고 진행되었기 때문에, 처음 잡았던 결말과 나중에 잡은 이야기가 뒤섞여 영상은 짧지만 이것저것 복잡한 느낌이었다. 공모전에 영상을 출품하러 시놉시스를 쓰고 연출의도를 쓰며 몇 일을 고민했는지 모르겠다.


이 학기를 마무리하는 Youth forum의 발제문을 쓰며 공부를 하는 다른 사람이 궁금했고, 나는 공부를 일단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09년 새로운 년을 맞이하던 그 때, 그것보다 좋은 시작은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방학을 시작하며 세운 생활은 매우 단순했다. 아침에 일어나 도서관에서 일어공부를 하고, 오후엔 책을 보고 저녁엔 영화를 보고 운동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매일 1권의 책과 1편의 영화를 보겠다는 막연한 나의 계획은, Pink haja 이 후 공부하지 않고 고민은 커져가던 '성'에 관한 영화와 책을 보는 것으로 바뀌었다. 한 달에 한 번, 유리와 만나면서 그간 봤던 영화와 책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Pink haja가 끝난 후, 같이 하면 좋겠다. 라는 바램을 구체적으로 옮겨보자는 생각을 했다. 계약서를 쓰며 방학 생활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지만, 한끗을 삐끗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영화를 구상하고 공부모임을 생각하며 방학의 나머지를 보냈고, '텍스트의 즐거움' 이라는 Pre-school을 경험하면서 이번 학기는 '공부의 학기' 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즐거워했다.


생각이 미래계획이 내일이 수도 없이 변하고 또 변한다. 아직 확신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확신이 생겨 창문에서 보이는 산처럼 굳건하고 싶다. 내 이름을 4학기 맞아 Hub란 뜻으로 바꾼 것은 그런 뜻이었다. 그러나 이름처럼 중심이 되었을까? 세상과 나를 연결시키는 고리로써는 아직 부족하지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Hub로는 괜찮은 중심인 것 같다.


공부모임을 준비하고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확실히 설레었고 기대되었으며 우리의 내일과 그 2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하자안에서 판돌들의 입으로 전해 내려온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말하고 있었고 7가지 약속의 성이 Gender이며 그 젠더가 뭔지 아는 사람도 늘었다. 더 이상 무감각한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 혼자 괴로워 하지않고, 사람들 속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내가 같이 하는 사람들이 배우기를 바랬다.


공부모임은 의외로 진행이 수월하진 않았다. 지난한 토론에 1주씩 각자가 관심 있는 주제를 가지고 얘기해보자고 했지만, 그 사람 이외에는 그 주제 혹은 다른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 적어 자기가 알고 있는 한도내의 이야기가 계속 나왔고, 결국 원점을 계속 돌게 되었다. 모임을 준비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으러 인터넷을 부유했을지도 모른다. 정작 중요한 것은 자신과 '페미니즘'을 어떻게 연결시킬까 하는 것인데.


내가 구상하고 자리를 만든 모임이라, 죄책감과 책임감이 있었다. 말해보는 방법을 바꾸거나, 이야기할 때 방법을 바꿔보기도 하였지만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었다. 책임감과 의무감에 '의식'하지 않고 공부하고 있지 않아서 때문이었다. 이젠 좋은 책을 보면 "오오, 이것이 진리다. 이 마인드로 살아야지" 라며 그전까지의 과정을 무시하지 않는다. 책이나 영화를 보며 이야기와 핵심과 문제를 내 안에서 연결시키고 새로 만들어보는 것이다. 단순히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것이 공부가 아니었다. 자기 안에서 연결해보고, 스스로의 이야기를 해보고 다른 사람(세상)과 연결해보는 것이 공부가 아닐까 싶다.


영상을 구상하며 용기 있게 던졌던 '성적지향' 에 관한 영상은 정작 상영회가 되던 날, 두더지 게임처럼 머리를 쏙쏙 내밀기만 했다. 사람들에게 커밍아웃하면서 이야기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하자작업장학교 내에서도 소수 였나 보다. 작업장학교에 입학하고도 out이 두려웠고 지금도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때보다는 가슴을 피고, 가슴을 조여매지 않고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하자를 수료한다, 학적정리를 한다. 를 하자를 '나간다' 라고 말하면서 이곳을 하나의 다른 세상으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유토피아라고 생각하다가 '밖'처럼 사람들끼리 별일 아닌 것으로 싸우고 험담하는 것에 큰 실망을 한 적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2년 반을 있다 보니, 유토피아도 다른 세상도 아닌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좀 '다른'사람들이 많고, 대부분과는 '다른' 가치관과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자작업장학교 하자를 좋아하고 자주 오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중에 한사람이고, 16살 가슴이 답답한 꿈꾸는 소녀에서 18살 가슴을 피고 있는 소녀가 되었을 뿐이다. 꿈에서 벗어나 현실을 보고, 그 현실과 마주하려고 한다. 더 이상 소년스포츠 만화처럼 '3일 후, 1주일 후, 3주 후, 1년, 16년 후' 이런 식의 시간의 축약 하지 않고, 그 생략에 시간에 있을 주인공의 노력을 생각해본다. 내가 작업장학교에서 2년 반을 흘려보내지 않았던 것처럼, 희노애락이 담긴 이야기가 그 안에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있었기 때문에 한 달이 생겼다. 그리고 그 한 달이 쌓여서 한 학기가 지나고 수료를 하기 까지 지난 4학기의 시간을 보냈다.


분명 내 16살, 하자 입학지원서가 통과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과는 다르게 살았을 것이다. 고등학교로 돌아갈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기타를 치겠다니 밴드는 찾아볼 수 있었을 것 같다. 내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 이 나이에, 지금의 선택과 과거의 선택들이 어떻게 미래로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다. 부모님이나 어른들이 경험했고 알기 때문에 어드바이스를 주긴 하지만, 난 편한 길 말고 미래와 마주하며 가고 싶다. 그러니 이곳을 나간다고 하더라도 남은 인생 패배/역전으로 나눠지진 않겠다.


그러니 너무 불안하고 긴장하며 눈앞을 생각하는 것보다 "Just do it", 그냥 해보면서 부딪히는 것이 '정도(正道)'이고 고대 페르시아 시인 루미가 말한 "틀린 행동과 옳은 행동이라는 생각을 뛰어 넘는 것이 있다. 거기서 만나자' 의 거기가 아닐까.


'2009.9.12 수료 >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세이 1-8  (0) 2009.08.18
에세이 1-7  (1) 2009.08.14
에세이 1-3  (0) 2009.08.08
에세이 1-1  (0) 2009.08.05
essay 1차  (1) 2009.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