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리고 오늘.

날 사랑하는게 아니고

연애가 하기 싫다. 머리가 짧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나 목소리도 아니거니와 성격도 아닌 탓에 내 성적지향에 말이 많다만 각설하자면 연애가 귀찮다. 연애를 시작하게 되면 애인과의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시간들을 조정해야하고, 그 생각들로 미뤄지던 일과들이나 우선순위가 바뀌고 데이트하고 싶은 곳들을 찾아보거나 함께 하고 싶은 마음 충만해서 찾아보는 시간이 너무 많다. 이런 시간들 속에서 사는 것이 나쁘지 않다. 아니, 나쁘지 않다. 라고 부정형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만큼 만족스럽다. 그 일과들을 하루하루 수행했다는 뿌듯함, 이런 나를 보고 친구들은 무성애자나 이성애자, 동성애자도 뭣도 아니고 자아성애자라고 이야기한다. 스스로와 보내는 시간을 너무나 좋아한다면서 말이다.

타인과 타인이 만나, 아무것도 전제하고 기대하지 않은 사이에서 어떤 특별한 관계가 된다는 것. 이 말만 봐도 귀찮다. 1. 만나는 것 2. 아무것도 전제하거나 기대하지 않은 사이 3. 특별한 관계가 무려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사람들은 연애를 이야기하고, 원하고 그리워하거나 추억한다. 귀찮은 과정보다는 그 경험에서 오는 기억들이 서로를 미화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아닌 연애들도 있다.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리고, 내가 미쳤지 어떻게 그런 인간을 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어떤 노래의 가사처럼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길을 걷고, 나 혼자 영활 보고, 나 혼자 전실 보고하는 것을 좋아한다. 영화나 전시를 볼 때 그 이야기 안으로 빠져드는 과정을 남에게 보여주기 쑥스럽기도 하고, 사진을 찍으려다가 잘못 눌러 셀카 모드로 본 내 모습이 웃기기도 해서다. 혹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 맛을 음미할 수 없는 것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고, 호젓하게 걷는다는 느낌과 찬찬히 걸으면서 그 풍경을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전시를 보러갔다 한 영상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 영상에서 나오는 시계가 세 개나 되는 이유는 감독이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저 시간과 공간이 가지고 있는 맥락에서 하나의 시간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어서가 아닐까그러다 문득 생각해보는 것이다(마침 전시장도 똑같았고) 한창 영화를 같이 만들던 친구들과 전시를 보고 나선 나는 이런 부분을 봤는데, 너는 이런 부분을 봤고, 아 맞다 그런 게 있었지 라면서 낄낄거리는 시간을.

그립다. 라는 말이 입의 문턱에 걸렸다. 아슬아슬하게 그 말을 다시 집어넣었지만, 한번 헛헛해지는 마음을 추스르긴 어려웠다. 어떤 사람은 말했다. 그림이라는 것은 그리움에서 파생된 말로 다시 볼 수 없는, 순간을 그리워하면서 그리기 때문에 그림이 된다라고. 난 그림엔 영 소질이 없으니 사진을 찍는다. 재생되지 않을 순간을 잡아두기 위해서.

흔히들 이별하고 나서 이별후유증을 이겨내기 위해서 바쁘게 산다고 이야기한다. 그 바쁘게 산다라는 말에는 일련의 사건들을 일과 혹은 일상으로 만들어 생각할 시간도 여유도 주지 않는 상태를 이야기한다. 이별하고 나선 연인과 다녔던 장소나 시간에 대해 우연히 자각할 때, 즉 이 순간이 그 때의 순간과 닮아있고 그 닮음을 알아차렸을 때 우리는 다시 이별의 서러움이라든지 연인의 부재에 대해서 생각하고, 슬퍼하거나 분노하거나 하는 둥의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왜냐하면 그 이전까지 그를 생각할 조각이나 여유가 없는 일과들과 일상들 사이에 지나치며 보지 않았던 틈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사진을 보여줄 누군가. 라고 생각해버리면 외로워진다. 지나간 순간들이 그리워지고, 그 시간을 재생하고 싶어 외로워진다. 외로움은 고독함과 다르게 타인에 의해서 채워지는 시간이자 순간이고 공간이니깐. 그렇다면 나는 적어도 외롭지 않았던 게 아니라, 연애를 하기 싫었던게 아니라 지금의 일상들을 깨가면서 어떤 것을 추억을 하거나 틈을 만들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외로움이 밀려온다라는 말처럼 외로움은 두고두고 쌓이다가 한꺼번에, 그리고 그 후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게 밀려온다. 바쁘게 살려고 하면서, 연애가 싫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하면서 사실 나는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틈을 발견하기 전에 일상 속에 틈을 발견할 시간을 묻어두고 숨겨두면서 시간을 견디면서 살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복상태  (0) 2013.06.23
2013년의 6월  (0) 2013.06.10
생일  (0) 2012.12.31
나도 잘 모르겠는 것들  (0) 2012.12.15
자기소개 1  (0) 2012.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