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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자기소개 1

1. 

1호선 지하철이 움직인다. 내가 지하철에 타서 자리에 앉는다. 7개의 자리 중 가운데 자리에 앉는다. 양쪽 끝에 한 두명씩 앉아있다. 내가 앉은 자리 양옆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책을 꺼낸다. 두꺼운 책이다. 책을 읽어가며 창뒤에 보이는 풍경이 변한다. 건물들이 점점 낮아진다. 겨울을 맞이한 논밭이 보인다. 병점역이라는 방송이 나오기도 전에 갑자기 내가 탄 칸에 사람들이 몰린다. 8-3, 8-4는 올라가는 계단과 제일 가까운 탑승구다. 역에 도착하자 학생들이 우르르 올라간다. 모두 다른 칸에 타고 있었는지, 한적한 지하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2. 

지도를 펼친다. 체스판의 말처럼 생긴 말들이 지도위에 서있다. 

일본 위에 있는 말. DVX-100B, 니콘 D-80을 들고 있다. 비행기에서 본 밭전자가 그려진다. 영화를 보고 있다. 도쿄슈레. 숙소에서 역으로 가던 비오는 날, 한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달린다. 옆에는 유란이가 있다. 자동차가 물웅덩이를 으껴밟는다. 물이 튄다. 유란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젖는다. 카메라를 들고 누군가 물어본다. 영상이 너에겐 무슨 의미야? 대답하지 않는다.

홍콩 위에 있는 말. 피크타워에서 미니버스가 내려간다. 버스 안에는 속도를 알려주는 전광판이 있다. 70이 넘어가면 소리가 나는 전광판은 내리막길의 시작부터 계속해서 울린다. 링난대학의 화장실. 아침이다. 맨 끝칸에 가서 창문을 열고 담배를 핀다. 작은 정사각형의 창문너머로 나무가 보인다. 매우 큰 나무들, 안개에 잠겨있다. 도로에서 큰 공원을 향해 사람들이 걷는다. 무지개 깃발, 팔찌, 배찌, 티셔츠 등 다양한 무지개색이 보이고 옷을 벗거나 입은 사람들이 있다. 다들 저만의 플랜카드를 들었다. 행진의 앞에서 누군가 무지개 깃발을 펼쳤다. 부감샷으로 보았다면 무지개가 세차게 움직였을 만큼 많은 사람들의 손과 손이 무지개를 뒤로 옮겼다. 대학 기숙사에서 말아피는 담배를 나눠폈다. 친구의 친구는 카페트를 뜨거운 물로 적셔진 물걸레로 닦았다. 친구의 친구가 물어본다. 너는 페미니스트야? 대답한다. 당연하지.

한 게스트 하우스. 사람들이 와글와글 떠들고 있다. 하루의 투어가 끝난 뒤의 열기다. 나는 얘기하다 다양성 이라는 말에 불쾌해진다. 한국어보다 영어를 잘하는 친구에게 간다. 난 영어보다 한국어를 잘하니깐. 저 사람들이 말하는 다양성이 정말 다양한거야? 다양의 한계가 있는데 그게 어떻게 다양한거야? 어?! 라고 화를 낸다. 

한 카페에서 친구와 담배를 핀다. 젠더/퀴어퍼래이드에 대한 얘기가 한창이다. 동기가 들어온다. 동기는 무슨 얘기했냐고 물어본다. 나는 퀴어퍼래이드라고 얘기한다. 동기는 알아듣지 못한다. 판단한다. 넌 끝

프랑스위에 있는 말. 프랑스 혁명 기념일, 1시간 동안 터진 불꽃놀이 화약으로 거리가 연기로 자욱하다. 게다가 케밥에 들어갈 고기를 굽는 이동식 차량으로 연기는 더하다. 이런 날은 Firework지! 라면서 아이팟을 듣는다. 술이 없어서 너무 아쉽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가족들과 합류하기 위해 헤멘다. 한 커플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걸 본다. 할리데이비드슨을 몰고 다닐 것 같은 가죽자켓의 남자 둘이다. 정말 잘 어울린다. 노틀담 성당위에 올라갔다. 조디 포스터가 연기했던 한 남자 가수처럼 생긴 남자가 사진을 찍는다. 같이 사진을 찍고 싶어서 안달난다. 그가 뒤를 돌아본다. 반긴다. 안고, 뽀뽀한다. 다른 남자다. 언젠가 사귀는 사람이 생긴다면 프랑스 그것도 파리에 오겠노라고 다짐한다. 

캐나다위에 있는 말. 역삼각형 모양의 무지개로 칠해진 도형이 있다.

미국위에 있는 말. 미국의 국기가 흑백으로 변한다.

대만/태국위에 있는 말. 말이 클로즈업 된다.

수많은 말들이 다시 나라와 도시위에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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