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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2013년의 6월

"어떤 성향을 지향한 적이 없다. 그래서 어떤 성향이냐고 물어본다면, 그런 질문을 듣기 싫어하는 성향이에요. 라고 대답해주고 싶지만 그 말은 어떤지 전 술 마시는 걸 좋ㄹ아하는 성격이에요^^ 라고 말해버리는 것 같아서"

1. 물론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 성격으로 인해 성격을 파악할 수도 있다. 대신 저 질문을 좀 더 구체화시켜서 몇 명과 (혼자 포함) 마시는 걸 좋아하는지, 술은 어떤 술을 마시는 걸 좋아하는지에 따라 술자리의 성격을 추측할 수 있고 그걸 통해서 대충 이런 사람이겠거니 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이유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있다.

2. 며칠전에 심리테스처럼 무성애자 테스트를 해봤는데 데미섹슈얼이 나왔다. 그러니깐 첫눈에 반하고 이러는게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이나 뭐 이런거에 반하고 성욕을 느낄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하는 그런 셩향이다. 그래서 사실 고민해보게 되는데, 레즈비언이라고 했을 때 성향을 나누고 성향에 맞는(?) 사람을 만나려고 하는 경향들이 있다. 대체로는 부치, 팸으로 나누지만 최근엔 무성향이 나오고 이건 전천과는 다른 개념이다. 전천이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개념이라면 무성향은 상대의 성향에 개의치 않고 스스로를 어떤 성향이라고 규정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커뮤니티 내에서 말이 많다. 그럼 전천과는 뭐가 달라요 부터 왜 그걸 굳이 그렇게 말해.

 난 이건 카테고리화하는 개념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난 스스로를 무성향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왜냐하면 1. 부치나 팸이라고 했을 때 기대하거나 예상하는 특징들을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기보다 그걸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걸 모르겠어서. 그 의미를 모르겠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서. 만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니깐. 2. 상대의 성향이나 일반적인 스타일이라기보다 그 사람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에 반하게 되니깐. 좋아하고 만났던 사람들의 공통분모는 존재한다.

하여간, 이런 성향에 논의에 있어서 최근 나름의 명쾌한 대답이라고 나온건 섹스로 구분하자는 것이었다. 좀 더 주도하고 싶고, 좀 더 받고 싶냐에 따라서 나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 논의로 따지만 난 성향을 말할 수가 없는게, 주고 받고를 떠나서 애초에 섹스라는게 귀찮기 때문이다. 아니, 그 자체로는 나에겐 굉장히 이상화 된 개념이라 더 그럴수도 있겠다. 가령 면대면의 밀접함보다 더 가깝게, 살결 하나에 마치 피부조직하나까지 만지게 될 것 같은 친밀함이나 밀접함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생각만 하면 그런 개념으로 정의되어있는 걸 알 수 있으니깐. 그런데 실제로 섹스를 하면 1. 그렇지 않고 2. 대체로 그런 섹스를 해본 적이 오래되었고 3.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귀찮아진다. 스킨십은 좋고, 밀접해지는 건 좋다. 하지만 섹스가 귀찮고, 그걸 왜 굳이 해야되는지 모르겠다. 

라지만 사실은 그 과정으로 가는 흐름을 좋아하기는 한다. 이렇게 되기 때문에 난 저 분류에서 내 성향이 뭔지 모르겠다. 

3, 며칠전에도 썼듯이 최근엔 연애 자체에 대한 생각이 희미해지는 것 같다. 차마 없어졌다곤 말하지 못하겠다. 멍 때리거나 할 때도 지나간 기억들이 마구 올라와서 그 감상에 쉽게 빠져버리니깐. 하지만 이건 연애에 대한 생각이라기보다, 그 아쉬움이나 그 때의 감정이나 상황에 대한 이입이 아닐까 싶다. 

 연애는 좋은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타인이 타인이 아니게 되고, 그러면서 더 더욱 타인이 되어가는 과정이지만 말만 봐도 이미 흥미로운 부분이다. 하지만 흥미롭다 라는 표현을 씀에 있어서, 이건 관찰자 혹은 3자의 입장에서 보고 있는 것이고 내가 있다라는 전제는 하지 않는다. 

혼자서도 잘 살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건 혼자여서가 아니라 나 자체가 불안한 지점이 많고 그것들을 불안하다. 하고 놔두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닥달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누군가가 있다고 해서 해결되는 지점인지 모르겠고, 그렇게 해결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의존적인 관계로 이어지게 되는 과정에서 그 관계는 연속성 뿐 아니라 단절성도 동시에 가지고 있으니깐. 난 여전히 불안하고, 그건 정말 분명한 사실이니깐. 여하튼 혼자라고 밥 못 먹지 않고, 영화 못 보지 않고, 전시 못 관람하지 않는다. 사실 잘만 보고 다니고, 요즘은 그렇게 싸돌아다닌 덕에 교통비가 10만원을 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딴 얘기지만 문화에 대한 지출비용은 단순 관람 비용과 시간 뿐 아니라 이동 시간과 비용이 크다는 게 수도권의 안타까움이다. 

어딜 간다, 봤다, 했다 라고 하면 나중에서야 혼자서? 친구랑 있지? 나중에. 라는 말에 아닌데? 라고 조금 소리 높여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왜 그 전제에 누군가와 같이 있을거라는게 너무나 당연하게 깔려있냐는 것이다. 그런 걸 혼자 즐기기 어려움이 혼자의 서러움이라면 난 혼자여도 괜찮다. 전시를 누군가와 갔을 때 좋아하는건 다른게 아니라 전시를 다 보고 나서의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의 즐거움이지, 그 전시 자체를 보러감이 아니다. 따로 보더라도 같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걸 좋아하겠다. 

문제는 여기서 내가 외로워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인데, 그게 연애랑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고 그건 문제가 아닐 수도 있고 문제일수도 있고, 문제라고 표현하는 건 여기서 이렇게 평평한 말로 써놨지만 사실은 그 틈들을 묵혀두고 있는건 아닌가 싶은. 


모르겠다. 그만 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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