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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12의


'이 시간은 오래된 서랍처럼 쓸모없는 비밀들로 가득하다 짝이 맞지 않는 젓가락처럼 나란히 먼 사람이여, 빛을 거두는 것은 너인가, 나인가 낡은 옷가지 사이에 숨긴 짝이 다른 신발, 신발은 몸 밖의 간소한 형식일 뿐인데 길을잃은 이야기들이 먼지처럼 떠돌다 사라진다 어제 오래된 새 한 마리가 세상 밖으로 날아갔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어떤 생일 中, 김선재


1. 신발에 대해서 고민하던 날들에, 나는 신발 하나를 떠올렸다. 그 신발은 아빠가 신던 신발이 나에게로 넘어왔던 한 켤래의 구두였다. 갈색의 구두약을 칠해야 청소가 되는 오래된 구두였다. 지금이야 무슨 스타일 하면서 종류가 다양하다는 걸 알지만 그 때는 코가 뾰족하지 않은, 아빠가 신던 구두쯤이었다. 어렸을 적에 부모님은 내 기억으로는 언제나 바빴다. 함께 산도 가고, 동물원도 가고, 대공원도 가고 이곳저곳 많이 갔다고 하지만 그런 주말의 이야기는 한 주의 평일들이 그 날보다 긴 것처럼 크게 기억되지는 않았다. 사촌동생들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집에 돌아갔다. 비슷하게 집에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보다 집에 빨리 가던 날은 없었다. 그렇게나 바쁜 사람들이었다. 짱구를 보면 짱구아빠의 발냄새에 가족들이 지레 겁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하루 종일 구두를 신고 다니면, 구두는 땀 배출이 원활하게 되지 않기 때문에 구두 안에는 상당히 많은 냄새가 난다. 그런 이유에서였겠지. 
 아빠가 신던, 그래서 내가 신었던 구두는 내가 신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끈이 끊어졌다. 구두의 끈은 구두와 하나처럼, 그렇게 있었는데 내가 고작 4개월을 신었나? 뚝-하고 끊어져버렸다. 나는, 어렸을 때 생각하던 자라서의 나는. 23살이 엄청나게 큰 숫자였고, 18살만 되도 뭐라도 될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부모님처럼, 아빠처럼 그렇게 바쁘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바쁘게 살지 않겠다의 구체적인 형태는 없다. 그냥, 바쁘지 않게, 그냥 저렇게는 안 살겠다고 생각했다. 끈이 끊어지고 나서야 생각해본다. 그렇게나 내가 다르게 살고 있었나. 오히려 그들보다, 더 정신없이 살고는 있지 않을까. 단지 기다리는 사람이 나에서 그들로 바뀌고, 나름대로의 생활이 생기고 사람이 생기고, 그러면서 잊은 건 아닐까. 그래서 다른 것들로, 그러니깐 술 취한 아빠들이 인형뽑기 기계나 야식에 목 매달고 흔한 풍경이 되는 것처럼(물론 한번도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보상하고 싶고, 그게 나한테는 주말의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나이가 들면 피곤해진다. 누가 못됐고, 잘못했고 나는 괜찮아. 이런 식의 생각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고, 그 나름의 이유들을 생각하게 된다. 

2. "짝이 맞지 않는 젓가락처럼 나란히 먼 사람이여, 빛을 거두는 것은 너인가, 나인가" 
서랍을 열면 쓸모없는 비밀들이 있다. 그를 알던 사람도, 나를 알던 사람도, 둘을 알던 사람도 아무도 모르던 이야기들이 있다. 그건 이제와서 나만 확실할 수 있는 것들.
믿어지지 않고,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꿈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확신할 수 있는 하나의 증거다. 오래된 꿈에서 그는 새장 안에 있었다. 이제는 놔야 한다면서 새장 밖으로 나갔다.
찾을 수 없는데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을 하나쯤 알아두는 것은 글쓰는데 어떤, 이야기를 만드는데 어떤, 꾸리는데 어떤 영감이 될지 몰라 꽤 괜찮은 일
일지도 모르겠지만, 오래된 멍같다. 볼 때마다 아프고 스치기만 해도 여전하다. 사람 만날 자신은 여전히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가 편하겠다.
삭제되지 않는 것이 고마워해야할지,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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