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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1편


며칠 전 노트북 화면을 보고 글을 쓰고 싶은가 싶으면서도 글을 전혀 쓸 수 없던 날에. 아, 그런 날이 지나고 타자를 두드리는 느낌마저 반갑고 정겨운 오늘이 되었다. 어떤 날들에게는 확실하게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은 시간이 흘러감이 필요하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이든 생각이든 흘러가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깐 1분같은 시간이 어떤 때는 하루나 한달보다 더 길고 큰 시간을 가져올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상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마음이 곰곰하게 마음 속에 들어가서, 지금 사실은 무슨 말을 쓰려는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어제는 술 취한 동기와 술 취한 선배와 셋이서 걸어가던 길에 언제 재밌게 놀자면서, 모텔같이 방 하나 잡아두고 놀다가 들어가서 자자고 했는데 그 선배 언니라는 인간이 셋이 들어가면 주인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그러더라. 이상한 기분이었는데, 왜냐고 물어보니 셋이서 그런거-그러니깐 나중에 말하길 그걸쓰리썸이라고 말했는데-그걸 못 알아들은 동기와 그걸 알아듣고 상당히 불쾌했지만 지나가려고 했던 내가. 머리를 그러니깐 좀 기르라는 이상한 결론이 나오길래, 머리를 기르면 남자한테 대시를 받는데 그것또한 달갑지 않다고 했지만, 커밍아웃하지 않았으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처먹을 일 없는 사람들이랑. 곰곰히 생각해도 기분이 너무 나빠서 왜 제 때 말하지 못했나 싶어서, 어제부터 지금까지 기분이 썩 좋지가 않다. 

그렇게 말하는 문제가 뭘까 생각을 해보면, 누가 봐도 너는 남자일꺼야. 라는 전제일까. 그 선배는 같이 다니면서 종종 나 때문에 생길 남자친구도 안 생긴다고, 왜냐하면 내가 남자친구 인 줄 알고 사람들이 헷갈려서. 라고 했지만, 그 때는 내가 없었을 때 참 잘도 생겼었던 것처럼, 마치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게 웃기다고 했지만 어제는 그 말에 얻어맞은 것 같았다. 얼굴을 정면으로 한대 얻어맞으면 얼얼한 것도 있지만, 상당히 멍해진다. 흔한 영화나 만화에서 코를 얻어맞은 주인공이 코피가 났을 때 아프다고 울기 시작하는 게 그런 거랑 비슷해서가 아닐까. 사실 지금 다른 것보다, 대부분의 어떤 문제들은 생기고 나서 두 가지로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1. 내가 왜 그 때 제대로 말 못했지 2. 그 사람이랑 같이 보낸 그 시간은 뭐지, 나는 또 사람 보는 눈이 없나. 그 사람도 비슷한 생각이다. 거의 한학기동안 내내 같이 다니면서, 지난 학기에는 문학사회학이든 감상적이든간에 영화든 이야기하면서 잠깐이라도 좋았던 시간들은 뭔가. 그런 시간이 또 생길지도 모르는데, 그걸 놓치게 될까봐 그래서 그런걸까. 
그런 아쉬움들이 만드는 건 결국엔 내가 깊이 느끼게 되는 수치심 비슷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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