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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해봤던 말

1. 레즈비언분석법: 피어싱을 좋아한다, 담배를 핀다, 술을 잘 마시거나 좋아한다, 머리가 짧다, 목소리가 낮다, 문신을 했다.나=피어싱(O), 게다가 좋아함?(O), 담배(O) 술 좋아함?(O), 머리가 짧다 (O), 목소리가 낮다(O), 문신을 했다(X) 문신만 하면 완전한 레즈비언이 되겠군요. 완전한 레즈비언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모자란 부분이 있습니다. 
저 항목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항목에 체크된 것은 어쩐지 2000년대의 흔한_신공의_풍경.jpg 같으면서도 현실적인 것 같지만너무나 비현실적이다. 흔한_레즈비언 이 아니라 흔한_일반화의_오류. 하지만 종종 듣는 말처럼 저 이미지는 적용되고, 그걸 실제로믿는 사람들이 있다. 전공 공부하며 봤던 이야기로 연결해서 보자면, 어떤 기호와 취향 등 문화라는 것에 계급이 있다고 말한다.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서 누릴 수 있고, 주변인들과 나눌 수 있는 즉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레즈비언 분석법에 포함된 문화적 요소들은 흔히 말하는 하위계층의 문화요소들이다. 예를 들면 담배와 연상되는 이미지는시대가 바뀌어도 아직까지 청소년이 담배피면 주로 뒷골목에서 쭈그리고 펴야하거나, 문학에서의 담배는 고민과 고뇌를 표현하는 요소라고 한다. 혹은 사회반항적인, 사회와 맞지 않는 계층의 문화요소라고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성소수자를 동성애자라고 번역하는 사회에서, 그 중 여성 성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은 남성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보다 얕고, 어둡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횡설수설 말했던 부정적인 이미지들에 대해서, 그것은 마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으로 '정상'이라는 탈을 쓰고 있다. 이 탈은 많은 매체와 교육, 말, 사회를 통해서 계속해서 주입되고 '정상'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이들 스스로가 내면화하게 되고 그에 대한 인식을 학습하게 된다. 
티부에 대한 사절 또한 그런 맥락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흥, 티부가 너님을 사절하겠소!
2, 여성스러운 '게이', 남성스러운 '레즈비언'에 대해서피어싱을 좋아한다. 많이 좋아한다. 월급날은 피어싱가게에 안 가도록 한다. 정줄을 놔버리니깐. 최근 구멍이 늘어났는데 안타깝게도 머리가 길어버린 탓에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머리를 자르러 갔다. 자주 가는 미용사 언니, 이렇게 짧아도 되냐는 말에 "괜찮아요! 피어싱만 잘 보이게 해주세요!" 라며 발랄하게 대답했지. 그래, 문제는 여기서 부터였다.
머리를 자르고 나니, 여자화장실에서도 힐끗힐끗, 지나가도 힐끗힐끗, 남자든 여자든 한번씩 그렇게 보고 간다. 참 오랫만에 느껴보는 것이라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슬슬 짜증이 나기도 한다. 술집 화장실에서 남자친구와 전화하며 길 막던 여자에게 비켜주세요. 라는 말을 하자, 남자친구는 여자화장실에 있다던 여자친구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 대화에 욕설과 함께 "내 생물학적 성별은 여성인 것이야!!!"라고 외쳤었다. 며칠 전에는 여자화장실에 손 씻으러 나오니, 날 보던 여자는 '여자화장실인데..'라고 중얼거리질 않나, 내 친구와 통화하며 나의 인상착의를 설명하자 '걸커'(걸어다니는 커밍아웃)이라더라. 

이러한 몇 가지 일화를 페이스북에 공유하자"헐 어떡해ㅠㅠ""영화에서만 있는 줄 알았는데;; 헐"등등에 반응들이 왔고 이에 "잘생긴 탓 이지" 라고 대답했지만. 흥! 스러운 마음이었다.

이런 일들이 있은 후 4월 20일이 되었다. 4월 20일은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고, 집회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학교에서 가게 되는 것이라 사람들이 많았고, 재밌는 실험을 시도해봤다. 일명 '게이스럽게 되보기'. 게이는 여성스럽고 레즈는 남성스럽다 는 흔한 일반화 혹은 편견에 있어서 나는 참 티나는 레즈비언이다. 오죽하면 나를 따라 여자화장실에 들어오는 중년 남성분들도 있을까. 그리하여 오늘의 의상과 행동거지, 말투의 컨셉은 '끼부리는 게이'였다. 공정한 평가를 위해 내 성정체성을 아는 이들에게 컨셉을 언급했었다는 점을 밝힌다.
컨셉:흔한_2009년_핫이슈_여자들은게이친구를원해_의게이.jpg          패션에 대한 관심(=악세사리 '과'착용),나긋한 말투, 손가락 주로 사용하는 제스쳐, 모델워킹,         도도하면서도 새침하거나 얄미움, 웃음소리는 '허허허허' 아니고 '으햫햐' 라는 느낌, 표정은 무겁지 않게 걸음걸이는 가볍게 등등.기간: 2012년 4월 20일, 4시부터 9시
집회가 끝나고 같이 참여한 게이친구에게 
"나 오늘 어땠어?"라고 묻자 "대박 끼순이"라고 하였고, 다른 일반(연애경험으로만, 스스로를 바이섹슈얼이라 말함)친구는 "넌 내게 가치관의 혼란을 주었어" 라고 하였다. ★대★성★공★

흔히 말하는 동성애자의 이미지는 여성은 여성스럽지 않은 남성스러운 존재이고
흔히 말하는 동성애자의 이미지는 남성은 남성스럽지 못하고 여성스러운 존재이다.
줄여말하면 부치=레즈비언, 게이=끼순이 라는 말이다. 
즉, 흔히 말하는 티부가 되고 흔히 말하는 게이가 되는 것이겠고
그것은 걸커(걸어다니는 커밍아웃)이랑 다를 것이 없다. 

여성은 이래야 한다, 즉 여성성에 대한 환상
남성은 이래야 한다, 즉 남성성에 대한 환상 등 
세상엔 너무 많은 환상들이 존재한다.
복제(시뮬라르크)라는 현실에서 누구보다 그것이 원래부터 있던 것이고, 태생적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과 환상은 신앙보다 깊을 수 있고, 때때로 자신이라는 진실이 아닌 환상으로 스스로와 주변을 보게 된다. 

티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취향이다. 그러나 티부를 '여성스럽지 못한, 여성이 아닌 것 같은데 차라리 성전환하지?(좀 안다 싶은 사람은 그런건 FTM 아닌가요? 라고도) 하는 것은 앞서 문제제기 했던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함께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을 가진 발언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는 이들 또한 호모포비아랑 뭐가 다를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해본다. 
끼 부리면 게이가 되고 편하게 하면 부치가 된다. 나란 존재는 참 이상하다. 부치가 도대체 뭘까. 남성스러운 존재라면 그 남성스러움은 또 뭐고?매니큐어 바르기를 좋아하고, 악세사리에 미치고, 화장을 배워가며, 나만의 예쁜 것을 사랑한다 로 나를 표현한다면이와 같은 형용사들이 여성스러운것이라고 말한다면, 액션영화 꽤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하고, 술을 잘 마시며, 성격이 털털하거나 쿨하다고 하는 형용사들이 남성스러운 것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도대체 어떤 성성을 지닌 사람이란 말인가.
2-1. 성정체성을 모르는 친한 학과 선배와 술을 마시다가, 어쩌다 나온 얘기선배 "널 처음 봤을 땐 애가 참 중성적이구나 생각했다? 근데 군대말투 쓰고 하는 행동거지가 되게 남자같은거야. 그래서 남성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여성적이기도 하고. 넌 중성적인게 아니라 그냥 너 같아"
3.
학교에 성소수자인권모임이 있다. 참여하기 위해 모임장을 맡고 있는 친구와 연락했다.
그 친구, 학교에 커밍아웃했고 왠만한 곳에서 발언하는 기회를 얻어내고 커밍아웃한다.
그 친구가 말했다. 
"근데, 나랑 다니면 동성애자라고 소문날 수 있어, 괜찮아?"
"그런 소문 신경 쓸 거면 애초에 연락안했어" 라고 쿨하게 말해보았지만, 이렇게 말하기까지 꽤 고민했던 기억.

4.
결론, 허상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현재 사회와 같은 구조와 형상,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모델을 만듭니다.
이상적인 가족의 구성, 이상적인 사랑, 이상적인 몸, 이상적인 행동 등. 
그러나 그것이 이상이 아니라 '정상'으로 오역되고, 그 이상 또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죠. 

대표적인 예: 집회에 참여한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보건복지부로 행진했습니다. "걸어서 갈 수 없다면 기어서라도, 죽어서라도 가겠다."라는 말을 외쳤고, 정말 그 말처럼 기어가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경찰 쪽에서는 기어가는 것이 불법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법에 명시된 보행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생각이 세상을 바꿔놓기 위해서는 우선 그 생각이 그것을 품은 사람의 삶을 바꿔놓아야 한다. 그 삶이 하나의 모범으로 변해야 한다, 알베르 까뮈'
 
집회에서 내가 했던 건 열나게 구호 외치고, 열나게 걸어다가 기다리고, 열나게 사진 찍고, 열나게 페북에 공유하고, 열나게 부딪혔던 것 뿐입니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던 일이라고 판단되는 일이었고,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집회가 아니더라도, 얘기하고 나누고, 움직이는 것이 변화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이상적이죠. 얘기하는 것 자체가 괴로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싫은 사람도 있을텐데.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있다는 것.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의 당신들이 있고, 시위에 나간 것을 써야하니 말아야 하니 를 적어도 고민하지 않는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 그렇게 삶이 바뀌어가고, 그걸 알아간다는 것. 그렇게 
아무렇게나, 아무렇게,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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