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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집안얘기

기억나지 않는 것을 쓸 자신은 없다. 언제나 기억하는 것을 쓰고 싶지만, 모든 것을 한번에 기억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떠오르는데로 쓰고 싶었다. 왜냐하면 어떤 기억처럼 누군가의 말과 말로 이뤄진 이야기를 내 이야기인 것 마냥 하고 싶지 않고, 사실은 내가 기억하는 것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취미라고 하기엔 소박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참 부르주아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목욕하기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발끝과 손끝이 쪼글쪼글해질 때까지 찬찬히 불리고 나면 때를 민다. 때를 미는 건 일종의 목욕재개 같은 것이고, 의식같다. 한번에 힘을 줘서 밀어지는 경우는 없다. 적당한 힘과 적당한 밀기가 있어야지 때를 밀 수가 있고, 그건 하루의 생활들이 쌓여있는 흔적같아서라고 생각했다.

때를 민다. 라고 생각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항상 생각났지만, 그게 언제였는지 누구였는지 기억하지 못했는데 어제 생각났다. 중학교 때였나, 영어 과외를 받으러 명지대 인근까지 갔던 날들이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갔나, 걸어갔나. 하여간 초등학교 때나 가던 길에 버스를 홀랑 타고는 내려서 그 아파트 단지까지 가는 길은 매번 멀었다. 가르치는 선생님은 아빠의 친구의 부인이었다. 그러니깐 학원업, 일종의 교육계에 종사하는 사람의 부인이었고 그 사람도 나름의 교육관이나 능력이 있었다. 읽기 수업이었나 하여간 영어 다이알로그를 읽고, 풀어오는게 숙제였는데. 
 하루는 선생님 얼굴이 불그레해서 물어봤던 것 같다. 그 사람도 취미가 때를 미는 것이었는데, 밀 때마다 얼굴도 빡빡 밀어버리는 바람에 빨갛게 올라온다고 했다. 무서운 선생님의 한순간 사람이 되는 때였는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사실을 말하면은 나는 과외같은거 가기가 싫었다. 요새는 무슨 생각을 하냐면, 왜 이렇게 착하게 굴려고 할까. 예전에도 이거 때문에 한참을 울고 지랄을 했던 것도 같은데, 한순간에 변하지 않는 것 같아서. 혹은 다시 가라앉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과외가기가 싫었어. 매번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멀었고, 서울의 이미지라고 하는 것들은 죄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풍경이었어. 가판대도 그랬고, 상점도 그랬고, 불켜진 아파트도 그렇게 보였어. 집에 가면 아무도 없는게 너무나 당연했고, 할머니네 집은 어느샌가 내 공간이 아닌 것마냥 동생들의 앳된 소리들이 넘쳐나서 귀가 아팠어. 인증받고,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에 그렇게 살아보려고 했는데, 나는 그렇게 못할 것 같아. 딸로 평생을 먹고 살 거 아닌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이렇게 하고 있다는 걸 봐주면 되지 않아? 보여주고 싶다는 건, 듣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랬어. 

화목한 가족이라고 자칭, 내심 뿌듯해하는 이 집안은 제대로 된 집안이 아닌 것 같아. 화목한 이미지에 사로잡혀서 어떤 것들을 해보려고 하지만, 결국엔 알맹이가 없이 겉돌기만 하잖아. 내가 이상해? 집안의 상 또라이가 없지. 근데 왜 집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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