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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9.12 수료/수료식

에세이 한 문단

매번 사람들은 수료 준비한다고 말을 하면 "너 그럼 수료하고 나면 뭐할꺼야?" 라고 묻는다. 영상은 아니라고 대답하면 놀라는 얼굴과 함께, "그래 그게 좋을거야" 라고 위로 같은 대답을 한다. 나는 보다 구체적인 나의 확신이 필요했다. 영상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 영상이 내 안에 사라질까봐 두려워했었던 것도, 폭이 없어보이던 것도 대학에서 선택한 과가 평생의 나의 진로를 결정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결정으로 영원토록 카메라를 잡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막막했었다. 확신 없는 내가 불안했고, 확신을 찾길 바랬다. 결정을 하는데 확신은 필요하다. 나는 확신 없던 나를 탓하며, 확신 없는 나를 밀어붙이는 사람 탓을 하기 싫었다. 확신 있는 것을 선택하고도 하게 되는 후회는 적어도 자책감으로 변하지 않았다.

왠지 현실세계와는 거리가 좀 있어 보이는 만화책 보는 걸 즐기고 더구나 보편적인 가치체계와는 전혀 다른 가치를 제안하는 작업장학교 같은 곳에 있다 보니, 수진이가 나보다 더 현실적일지 모르는 생각이 든다. 대학 졸업 후엔, 당연히 취직이고 어떤 곳을 가야 좋고, 어떤 것을 선택해야 좋은 것인지 그 애가 나보다 빠삭하게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론 오히려 그것이야 말로 초현실이고 판타지이고 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하다보면 잘 사는 거겠지. 하는 종류의 자기최면이 충분히 가미된.

매번 '시작하겠다.'로 마무리 지었던 에세이처럼, 새롭고,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겠어, 라는 말로 숨지 않는다. 분명 새로운 것을 찾게 될 것이고, 알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을 알기엔 18살이라는 나이는 너무 짧지 않은가. 그러나 새롭고, 처음 한다는 것에 지금까지 내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이건 하나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계속 시작하고 끝나는 옴니버스 영화가 아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했고 끝나려면 18년보다 긴 시간이 남은 장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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