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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고향 생각


전주가 좋다. 전주에서 오거나, 전주에 살았던 사람들을 (많이는 아니지만) 만나게 되면 
몇십분이고 전주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다. 물론 안 좋은 것들, 많이들-서로서로-아주 잘-알기 때문에 
가령 담배 하나 피는 것도 어렵지만, 아는 사이가 아니어도 알 수 있는 사이가 전제되었나?
괜시럽게 살갑게 대하는 말들이 좋다.

시방 허벌나게 큰 손으로 듬풍듬풍하게 주는 반찬도 밥도 좋고
친근하지 않은 것 같은데, 서울서 괜히 말 걸면서 치근덕거리면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 아저씨들보다, 어디서 왔는감. 얼마나 있다 갈라는감
하믄서 말 거는 아저씨들이 좋다.
아, 이건 사실은 다른 지역을 가도 그렇다.

지역의 이방인이 아니라 누군가 알게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전주에 갈 때면, 초등학교 때가 아마 제일 처음으로 생각나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할머니 집도 자주 놀러가고 그랬는데, 특히나 방학 때면 몇일이고 몇 주고 있어서
약방에서 탕약기 돌리고, 걸레질 하고, 침 놓는 것도 구경하고(아주 조심스럽게)
그게 하나하나 재밌었다. 또 옥상에 올라가서 뛰는 것도 재밌었고
옆집 아들이랑 눈싸움하는 것도 좋았다. 
할머니한테 겁나게 혼났고, 알고 보니 나는 숨고 사촌동생만 혼나게 했던 사고들도 많이 쳤지만
그래도 그 한약방에, 그 집에-심지어 지금까지 몇 가지 바뀐 인테리어와 구조들을 빼고나면 
절절끓는 방이라든가 어렸을 때부터 베개로 삼았던 베개라든가
그래서 동생들이 생길 때마다 그 베개가 걔네가 베는 게 아주 싫었지만,
풀어놓으면 참 많이도 나온다. 

향수가 느껴지고 오래된 곳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고향일까.
매일매일 자랄 것처럼, 벽에 빨간 색연필로 그려놓은 어느 날의 몇일들이 기록된 벽같은 곳이 고향일까
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변해가고 있고, 그렇게나 시간이 지났음을 알게 되는 곳이 
고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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