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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겨울 맨발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 같다. 빨개서 터질 것 같은 발가락이 보이는 것 같다. 너무 차가워서 감각도 없어지는 것 같다가 따듯해서 발 주위에 눈도 녹일 것 같이 열이 나는 것 같다. 눈은 창백하고 발은 빨갛게 올라오는 것 같다. 그녀가 그녀를 위해 끌어올리던 분홍색 극세사 이불이 보이는 것 같다. 애매하게 추워하면서 반팔에 양손을 허벅지 사이에 끼어놓은 장면이 생각난다. 겨울에 아이스크림을 씹어먹으면서 가던 길이 생각난다. 슬리퍼를 신고 시멘트로 된 내리막길을 뛰어내려가던게 생각난다. 사실 뛰어내려가려던게 아니라 내리막길이라서 멈추지를 못해서 급한 것 같은데 묘하게 긴장되는 이상한 기분이 생각난다. 슬리퍼가 뒤꿈치를 치면서 탁탁,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겨울은 춥고 그래서 따듯하다. 흩어져있는 온기들을 주머니에 꾸겨넣어가지곤 잔뜩 움츠리고 손을 꼽아 넣은 것 같다. 목도리가 까실거리는 것 같다. 스웨터가 등을 간지럽히는 것 같다. 사실은 한번도 입어보지 않은 것 같다. 직접 짜고 있는 털실이 있는 것 같다. 사실은 그건 한번도 완성되지 않았다. 차라리 시를 쓰면 좋을 것 같다. 아니다, 소설이 나을 것 같다. 아니다.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니다, 그러면 숨이 막힐 것 같다. 

겨울에 쉬는 숨은 터져나오는 것 같다. 여름에도 숨은 터져나오는 것 같다. 박차오르게 더 이 상 참을 수 없을 것 같아서 터질 것 같다. 하지만 겨울은 몰아쉬어야 할 것 같다. 다들 옷 속에 파뭍혀있지만, 그래서 모든 게 다 보이는 것 같다. 투명하게 살아가지는 시간 같다. 하지만 그래서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모두 이미 보고 있기 떄문인 것 같다.

끝없는 가정인 것 같다. 확실한 건 없는 것도 같다. 사실은 나는 모르는 것 같다. 
그녀는 이름을 알았던 것 같다. 그 사람은 기억했던 것 같다. 그렇게 사라져버린 것 같다.

그래서 어디엔가 있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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