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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사랑에 관하여

사랑하지 않는 것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위증일테지만, 사랑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음은 위선이나 僞의 성질을 가진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차라리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무언가-대상이든 사물이든 사람이든 어떤 대상이라면-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 사랑한다는 마음은
열번을 이야기해도 닳지 않을 마음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차라리 사랑하고 사랑해서 사랑했다. 라는 문장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그런 당신에 대한 말들이 흘러나오는 것이 사랑에 보다 가까운 게 아닐까 싶어서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사랑은 불가항력적인 것이었다. 에로스 자신도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 아이의 모습이었던 것은, 
아이의 성질이 놀이에 있고, 때문에 그 놀이에는 의도나 목적이 없는 놀이 자체가 목적인 것이라 
아름다움이 그것을 사랑하라고 이야기한다고 해도 실수 할 수 있고, 마치 에로스가 프리케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게 우연이었던 것처럼,
이성조차 이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들은 아름다움을 사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신적인 것은 아름다운 것이었고 그 아름다움에는 대상이 어떤 동물일지라도 사랑하게 된다.
이오가 황소를 사랑하고 다나에가 황금비를 사랑했던 것처럼. 그들의 이유는 오로지 그것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마음을 한 가지 방법으로 표현한 것 뿐이다.
그러니깐 수많은 문장들이 존재하고, 수식어가 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다시, 다시
반복되지만 재현되지는 않는다. 재연 또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다시 되풀이 한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건 그 이전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상을 특정 방식으로 기억하고 추억하면서, 그건 하나의 시각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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